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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Aug 27. 2022

하루를 망친 당신에게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푹 자요"

*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공모전 참여를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언제 출발하셨어요? 늦게 출발했죠?"

"죄송합니다. 우면산에서 사고가 나서 3분 늦게 출발했습니다."

"아씨~ 추워 죽겠네. 3분이나 기다렸잖아. 진짜 짜증 나."


몇 해 전 겨울, 인천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목격한 대화다. 그 승객의 안하무인(眼下無人)한 태도에 나는 기사님이 걱정됐다.


"오늘 오전에 서울에서 사고가 나서, 인천 도착하자마자 나왔는데도 늦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기사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한번 승객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차 맨 뒤로 자리한 승객이 험한 욕을 시작한 것이다. 선악이 게 대비되는 상황에서, 앞자리에 앉은 승객들이 기사님을 위로했다.

"어휴, 기사님이 참으세요."


기사님은 계속 화를 눌렀다.


하지만 문제의 승객은 꾸준히 화를 드러냈다. 기사님에게 들리도록 떠들썩하게 전화를 해댔다. 전화 상대는 친구도, 언니도, 형부도 포함돼 있었다.


"XX 년이 늦게 출발해서 늦을 것 같아. 아침부터 진짜 열받게 하네, XX 년이"하며 버스를 늦게 탄 일을 각각 다른 상대에게 곱씹어 전달했다. 버스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새로운 승객들이 올라탔고, 이제는 앞자리 기사님과 끝자리 승객 사이의 모든 사람들이 이 욕을 듣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난 화를
이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걸까?'


다른 곳에서 켜켜이 묵은 갈등을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폭발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상황을 주시하며 아침부터 들은 수만 가지 욕들을 내 것처럼 소화하고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기사님은 인천을 빠져나가기 전 차를 멈추어 승객들에게 양해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 제가 내일모레 환갑인데 계속 욕을 먹으며 저 승객을 모시고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면산 터널에서 사고가 나서 인천에 늦게 도착했고, 출발시간 3분이 늦어서 사과를 드렸는데도 계속 욕을 먹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 못합니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고 출발했는데, 이렇게 욕먹을 줄 알았으면 화장실이라도 갔다 올 걸 그랬어요. 승객 분들께 죄송하지만 경찰을 불러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겠습니다."


그 당 나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강강약약*인 줄 알았는데, 실은 강약약약*이다. 왜 이렇게 약해졌지?’하고 담담히 실망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심지어 친구의 일까지도 대신 따져주기도 했는데, 성인이 돼서는 나의 일 어느 하나도 바로잡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일을 꾹 누르거나 내가 해결하지 못해 다소 권위 있는 사람 손에 내 문제를 맡긴 채 살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괜찮은 척하느라 몸이 축나 있었다. 내가 불편한 상황에 의사 표현하는 것을 의식해서 교정해야 했다.

(*강강약약 : 강한 사람한테는 강하고 약한 사람한테도 약하게 대하는 태도)

(*강약약약 : 강한 사람한테도 약한 사람한테도 모두 약하게 대하는 태도)


그래서인지 문제의 승객에겐 을의 입장이고 다른 승객들의 이동도 신경 써야 하는, 기사님이 역으로 성질을 팍 낸 것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몇몇 승객들은 버스가 멈추자마자 전철로 갈아탔고 기사님은 일반 승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일일이 전했지만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게는 기사님이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선언하고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적으로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비쳤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인천

버스 정류장에 10분 넘게 서 있었을까?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은 기사님과 승객의 자초지종을 따로 들었다.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력해서' 그 승객의 잘못을 경찰에게 전했다. 기사님은 그 승객이 하차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 했다. 승객들 모두 '욕'을 라디오처럼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같은 요구를 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경찰은 문제의 승객에게 "지금부터 조용히 하고 가세요."라고 한 후 상황을 종결시켰다. 후에 문제가 생길 시 기사님에게 다시 고발하라고 했다. 그 승객은 여전히 버스에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또다시 난동을 피우면 어떡할 것인가? 내가 기사였다면 화가 나서 운전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난 가끔 우리나라 경찰이 피해를 예방하지 못하고, 피해가 발행한 후 조치를 취해주는 것 같아 출동의 목적이 의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승객이 난동을 부리던 말던, 기사가 운전을 잘하면 없는 일이 되고 사고가 나면 그때부터 운전 고의 방해로 처벌을 받는 건가? 기사에게 내뱉는 쌍욕을 들은 승객들이 10명도 넘는데 경찰들의 대처가 안일하게 느껴졌다.


3분 늦었던 버스는 30분이 지연돼 출발했다. 문제의 승객은 초반엔 조용했지만 고속도로에서 여전히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며 소음을 냈다. 참지 못한 승객들이 조용히 해달라고 자리에 가서 말하니 또 잦아들었다. 그렇게 입씨름을 하며 서울에 도착하니 강남 즈음에서 차가 굉장히 막혔다.


오랜 인내심으로 상황을 참던 한 할머니 승객이 갑자기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소변이 급해지셨던 것이다. 기사님은 죄송해하며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할머니 승객을 내려드렸다. 그곳은 할머니의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화장실은 가까웠다.


기사님은 계속된 지연 상황에 모든 승객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가려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무리하게 지나가던 택배 트럭이 버스에 충돌해 택배 트럭의 사이드 미러가 부러진 것이다. 물론 기사님도 마음이 바빴기에 그 택배 트럭을 양보하지 않았었다. 버스 기사님은 다시 강남 한복판에서 차에서 내려 사고를 수습했다. 버스는 두 번째로 오래 정차하게 되었다. 이때 문제의 승객은 미꾸라지처럼 버스를 빠져나갔다. 버스 기사님은 곧 다시 탔고 승객들에게 연거푸 "죄송하다"라는 말을 전했다. 기사님의 하루를 내내 응원하던 나도, 풀이 죽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약속을, 경찰이 한 번 출동하는 바람에 연기했는데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취소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날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고 있었다.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상황을 제삼자에게 이야기한 후 자기 객관화를 진행 중이었다. 매 상담 시간마다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자책하지 말라"였다. 선생님은 내게 자책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나의 문제도 있지만 상대의 문제, 상황의 문제도 섞여 있는데 모든 것을 자책으로 끌어 힘들어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자책하지 말라"는 그 말이, 상담을 취소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겨우 깨달아졌다. 버스 기사님을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알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의 교통사고 정체로 버스 기사님이 인천 차고지에 늦게 도착한 것,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연착에 버스 회사의 시스템이 부족했던 것, 3분 지연에 한 승객의 컴플레인이 선을 넘은 것, 출동한 경찰이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운전기사를 우선 보호하지 않은 것, 마음이 바빴던 택배 기사와 사고로 또 출발 연기가 된 것.


이렇게 연거푸 생각해보니 그랬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던 기사님 마음에 쌓인 죄책감이 그분의 몫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날의 불운은 누군가 기사님께 훅 던져주고 간 것들이었다. 약속을 놓친 나도 기사님을 탓할 수 없었다. 그날 하루 일진이 꼬이는 걸 맨 앞에서 모두 목격했기 때문이다. 만약 기사님을 탓했다면 그냥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며 나의 오랜 습관을 깨닫는다.

‘나의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자책하지는 말자. 하루를 망친 건 내 잘못이 아닐 수 있다.’


나 말고도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조심하면서 자신에 대한 판단은 쉬지 않는, 고매한 인품들에게 안으로 말하듯 일러주고 싶다.


"자책을 자주 한다는 건 자기 성찰을 자주 하는 것이기도 해요.
당신이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그건 매번 해왔던 거니까 이번엔 다르게 생각해보자고요.

제 잘못이 아니어도 하루를 망칠 수 있더군요.
그러니 오늘은 자책하지 말고 잘 자요, 푹 잤으면 해요."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쿠바 아바나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성숙한 태도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바껴야 할 건 자책하는 습관,

타인이 나의 계 이상을 넘나들도록 내버려둔 행동,

그런 것이 되야할 때도 분명 있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란 걸 '아는 것'!




▶ '알아주다'의 다른 이야기

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0대를 갈무리한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 당신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더군요.


이 글이 당신의 삶에도
도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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