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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잇아웃 정PD May 01. 2016

혜민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이 책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을 꿈꾸며

요즘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혜민 스님의 신간. 한창 방황하던 시기인 4,5년 전의 나였다면 재밌게 봤을 수 있겠지만(생각해보니, 4년 전 나온 전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그렇게 재밌게 보진 않았었다...), 이런 내용은 지금의 나에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었었던 이유는, 읽어야 했기 때문에. 함께 책 읽고 있는 친구의 선정 도서다.)




전작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스님의 사진이 책 표지에 딱! 나와 있다. 이런 표지에도 거부감이 적은 저자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다행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띠지에만 프린트가 되어있다.


이미 출간된 지 좀 되었기에(2월 3일 출간), 그간 이 책에 대해 가장 놀란 부분은 엄청난 판매량이다. 출간 즉시 1년 넘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움받을 용기'를 제치고 1위에 오르더니, 그 뒤로 계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1위를 차지할지, 최종 판매가 얼마나 될지 알 수는 없지만,  300만 권 정도 팔렸다는 전작보다는 분명 더 많이 팔리지 않을까 싶다. 


이미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의 차기작이기에, 당연히 베스트셀러에 많은 판매량이 보장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작 발표 이후 많이 바뀐 사회적 인식의 변화들 때문에 이번 책도 비슷한 반응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온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위로, 힐링, 치유'는 그 피로도가 상당하고, 그것이 더 이상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출판계에서도 최근 (또 다른 변형이라고 생각되는) '미움받을 용기' 이외에 자기계발이나 위로, 힐링 등을 주제로 한 책이 그렇게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이번 총선에서의 2,30대의 투표율과 최종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건, 좀 과한 생각이겠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혜민 스님의 신간은, '힐링, 위로'를 전면에 내세운, 마치 3,4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내용이었다. 절반 정도는 트위터에 올린 글이고, 나머지는 조금 긴 새로 쓴 글, 그리고 중간중간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 구성, 내용 모두 전작과 동일하다. 그래서, 정말 모르겠다. 왜 이렇게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런 내용의 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걸 알아주고, 옆에서 지지해주고, 힘을 북돋워주고, 같이 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주위에 함께할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바로 그런 경험을 했다.


'왜 이 책을 읽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책을 보다가, 6장 '치유 : 자비의 눈빛과 마주하기'의 한 부분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지금 네 앞에 어머니와 어린 너에게 상처 주었던 큰고모가 있다고 상상해봐. 그리고 어렸을 때 상처받았던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큰고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는 거야... 그냥 하고 싶은 말, 정말 내 속에서 올라오는 말, 있는 그대로 막 하는 거야. -199p 


지금 나에게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그 미움이 너무나 크기에.. 많이 들어본 내용,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나에겐 이 부분이었지만,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겐 다른 부분이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분명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서할 마음은 생기지 못했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이 책을 보는 다른 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까... 만약 다들 비슷하다면, 결국 이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왜 잘 팔리는지는 의문이고, 날 울린 부분이 한 곳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겐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4년 전에 비하면 힘든 사람은 더 늘어났을 테니, 이 책이 잘 팔리는 건 당연한 결과일까. 


어차피 많이 팔렸으니,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나마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를, 그래서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시기를, 그 걸어가는 과정을 내 옆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그 결과 이런 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가 만들어 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서 해나가야겠다. 



p.s 책은, 독서는 분명 새로운 세상을 위한 통로다. 이 책을 통해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고, 그 결과 새로운 책들을 찾아나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책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로와 힐링'은 넘어졌을 때 일어설 마음을 가지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내 두 다리로만 일어설 수 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은 다양하고, 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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