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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근 Jan 05. 2018

사막, 야생, 어둠이 주는 해방감과 두려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6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6


2017.07.21 날씨 건조한 무더위 / 네바다


총 이동 거리 : 3,452.66 km

깊은 어둠 속, 텐트에 기대어 눈앞에 놓인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시리게 빛나는 별을 전등 삼아 글을 써 내려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에 그리고 같은 공간 속에 있지만, 눈에 보이는 저 별이 지금도 존재할지, 지금은 사라졌을지 알 수 없겠지. 생명의 빛을 품은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팔 분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그간 품었던 희미한 생각이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7


2017.07.22 날씨 건조한 무더위 / 네바다


총 이동 거리 : 3,538.66km

이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잘 수도 없었다. 모래와 돌이 섞여 있는 길을 벗어나면 날카로운 사막 식물이 즐비한 평야가 펼쳐졌고 덕분에 평야에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시계는 늦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물도 다 떨어져 버려 입안이 바짝 마르는 중이었다. 지도를 보며 한참을 고민하다 가장 가까운 도로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지나가는 차라도 붙잡아 물을 달라고 할 참이었다. 오십 분을 달려 차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두곤 전조등을 흔들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차를 보는 것조차 힘들었었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목이 너무 말라 육포를 꺼내어 하나씩 씹고 뱉어냈다. 

발밑에 씹다 뱉은 고깃덩이가 서서히 쌓일 때쯤 도로 끝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차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향해 불빛을 비췄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점점 차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잘 볼 수 있게 손을 함께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나를 봤는지 상향등이 켜졌고 곧이어 파란 불빛과 빨간 불빛이 번갈아 가며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목이 너무 말라서 그런데 물 좀 주실 수 있으세요?”


그는 차로 뛰어가더니 물 세 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물 한 병을 벌컥벌컥 비워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도대체 여기서 자전거를 왜 타고 있는 거예요?"


"미국 횡단 중이에요. 뉴욕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엄지를 치켜들며 대단한 여행이라 말하고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은 어떻게 자는지 물어보았다.


"아뇨, 그냥 캘리포니아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곳에 와서는 보통 캠핑을 하고 있고요"


그는 캠핑이라는 단어에 놀라며 사람과 동물을 정말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곤 캠핑을 할 때는 경찰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며 도로에서 벗어나서 하는 편이 낫다고 귀띔도 해주었다. 이제 자신은 순찰을 가야 한다며 행운을 빈다고 가슴주머니에서 초코바와 사탕을 꺼내며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대로 도로를 벗어나 다시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8


2017.07.23 날씨 건조한 무더위 / 네바다


총 이동 거리 : 3,631.66km


얼마나 달렸을까. 며칠 전부터 속도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배터리가 다된 탓일까 더 이상 이동한 거리를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정해진 길 없이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요즘 거리 감각이 더 없어졌다. 밥때를 놓치기가 일 수였고, 내가 지쳐야만 그날의 라이딩을 멈출 수가 있었다.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나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날마다 버텨내기가 여전히 힘들었다.

밤이 깊었지만, 오늘도 자전거에서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다. 텐트를 칠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을뿐더러 날이 선선하여 조금이라도 더 달려놓는 것이 앞으로를 위하는 일이었다. 깊은 밤, 자연 속에 있다 보면 해방감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들어 왔었다. 더 이상 어떠한 규율도 존재하지 않았고 일말의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지켜줄 것은 없었고 멀리서 지나가는 야생 동물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심지어, 사슴조차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길 바랐었다.


야생 속에서 만나는 것은 작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은 얼마만큼의 답답함을 느끼고 또, 매일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는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동물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듯이 그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에게 더 큰 두려움을 느낄 것 같았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평생 그렇게 살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가진 더러운 인간성의 단편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이럴 때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작은 환멸을 느꼈다. 그토록 잔인한 공간에서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역겨웠다.

< 계속.......둘이 함께 시작했던 북아메리카 횡단 여행은 뜻하지 않은 강성웅 씨의 귀국으로 이동근 씨 홀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여행, 그의 여행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건너는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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