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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름빛 Oct 13. 2017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 일레인 N.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을 읽고

나는 늘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섞이지 않는 아이였다.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설명되지 않았고 소통되지 않았다. 아무리 설명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았다. 

외로움은 숙명 같았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나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심리학 서적 특히, 성격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이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다. 

근래에 몇 가지 갈등들을 겪으며 아직 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했다. 수없이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나는 또 길을 잃었었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7년에 출간된 책이다. 일레인 N. 아론은 심리학에 처음으로 '민감(sensitive)'라는 잣대를 제시했다. 그동안은 내향성, 두려움, 억압 또는 숫기 없음 등으로 설명되던 특성들이다. 작가 역시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고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드는 '치명적 결함'과 마주"(25쪽)했기에 가능한 연구였다고 한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연구인 만큼, 아직 표본이 적었다(민감한 사람 40명을 면담했고 무작위로 300명에게 전화를 걸어 설문조사 했다.)고는 해도 작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초판 6천부를 찍었는데, 출간 후 5주만에 다 팔렸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총 17개국에서 번역되었다고 하니 나만 위로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가진 예민한 성향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할 뻔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민감함'은 획기적인 특성(혹은 발견)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격심리학의 성격 5요인 중에서 신경성(neuroticism)과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이라고 일컬어지던 특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경성과 더 관련이 깊은 것도 같다. (주로 신경성과 관련이 있는 같지만 작가는 민감한 사람들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개방성도 넣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면, 그동안 신경성이 높은 사람을 부정적인 특성을 더 많이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민감함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다. 

                                                                                                                                         

"민감한 사람들이 "나 자신을 찾았다"라고 하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라고 속으로만 고민하던 문제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단지 아주 민감할 뿐이다. 우리가 결함이라고 생각해온 성향은 이제 더 이상 결함이 아니다."(5쪽)


책에는 간단한 민감도 테스트도 실려 있다. 총 23개의 질문으로, 그렇다는 답변을 할수록 민감함이 높은 사람이 된다. 나는 두 개를 제외하고는 다 그렇다는 답변을 했으니 민감한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더욱 타인과 소통이 되지 않고 삶이 괴롭고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신경계가 민감하다는 것은 정상이며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15~20퍼센트 정도가 그런 특징을 갖고 태어나며 당신도 거기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주변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감지하므로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반면 자극적인 환경에 오래 있거나 신경계가 소모될 때까지 시각과 청각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피곤해진다. 따라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서 당신은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부모나 교사들은 당신에게 커다란 결함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하며, 그 특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후에는 직장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감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19쪽)


위와 같은 경험들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특히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더더욱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스스로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었다. 좋아하려고 노력해도 쉽게 좌절하고 쉽게 피곤해하고 쉽게 모든 것에 예민해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작가처럼 나도 "툭하면 화장실로 달려가 숨어서 우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이러다 혹시 미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25쪽)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민감함'(이라고 써 있지만 또 그 번역이 더 맞다는 판단은 들지만 나를 설명할 땐 예민함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이 나에게도 유용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좀더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고 "보다 직관적이 되어 반의식이나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찾아내 처리"하기도 했고 "사물이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는지, 또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냥 알"기도 했다.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직관이 종종 맞기도 하므로" 나는 "좀 더 양심적"(41쪽)인 사람이 되었다.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신중하고, 대담하면서도 불안하며, 쉽게 지루해하면서도 쉽게 긴장"함으로써 "내면에서는 왕실의 고문과 충동적이고 전투적인 전사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78쪽)기는 했어도 덕분에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할 일은 또다시 배우는 일이겠다.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이러한 믿음을 형성하지 못하면 만성적인 수줍음, 불안, 또는 회피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믿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137쪽)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운동을 잘 해야 하고, 정상적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145쪽)

"부러움은 우리에게 한두 가지 교훈을 일깨워 준다. 무언가를 원하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점은, 세상일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서 한 조각의 기여를 하고 한 조각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146쪽)

내가 '다른 소수자'라면, 앞으로도 타인에게 이해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스스로의 이해를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질타하고 미워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절약될 것도 같다. 노력하되 자신을 믿고 사랑하자. 다시금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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