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플라토니, 『감각의 미래』 서평
총 3부, 11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감각에 관련된 과학적 연구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1부는 오감(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 2부는 초감각적 인식(시간, 고통, 감정), 3부는 인식 해킹(가상현실, 증강현실, 새로운 감각)을 다룬다.
이 책은 미국인이자 기자가 쓴 책답게 감각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들과 사례로 이루어져 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녹음기 네 대, 공책 37권, 렌터카 세 대, 수없이 많은 배터리를 소진”(446쪽)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례들 사이에서 핵심 내용을 찾고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은 책이 되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지만, 오히려 정리가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사례들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 자체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번역서의 경우 원제를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원제는 『We Have the Technology : How Biohackers, Foodies, Physicians, and Scientists Are Transforming Human Perception, One Sense at a Time』이다. 원제 중에는 ‘바이어해커’란 말이 포함되는데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이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이 책에서는 “사회와 문화의 소프트 바이오해킹과 과학기술의 하드 바이오해킹”(17쪽)을 다루기 때문이다. “소프트 바이오해킹이란 우리가 타인과 주변 환경에 대한 중요 감각 정보에 주목하는 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소프트 바이오해킹의 영향을 받으며 이를 수동적으로 경험”하는데 “언어, 문화, 일상적인 형성적 경험”이 이에 속한다. 형성적 경험이란 “음식, 평범한 사물의 이름, 주변 사람들의 행동 방식과 그것이 나의 행동을 강화하는 방식”(17쪽)이다.
우리의 감각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경험과 객관적인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각자에게 진짜처럼 보이는 인식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인식들은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각을 표현할 언어가 없으면 그 감각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사례와 함께 제시되어 있어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감각들을 받아들이지만, 정보 과부하를 피하고 일관성 있는 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뇌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요약하고 편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1부는 오감과 관련된,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1-5장)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예측하는 내용이다. 2부는 초감각적 인식을 다룬다. 6장은 인간이 시계를 바탕으로 시간을 형성한 과정, 시간을 감각할 수 있는 우리 몸 안 장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7장은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타인과 관계함으로 생기는 감정적 고통)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다루며, 8장은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감정 역시 사회적으로 형성된다는 내용이다.
과학기술의 하드 바이오해킹이란 (이 책에 뚜렷하게 쓰여 있진 않지만) 과학과 접목되어 인간의 인식을 읽어내고, 그렇게 읽어낸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거나 혹은 기존의 인식을 새로운 인식으로 바꾸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과정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3부이다. 3부는 가상현실(9장)과 증강현실(10장)에 관한 기술과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으며, 일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와 새로운 감각(11장)을 찾기 위해 신체를 개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상현실(9장)과 증강현실(10장)를 읽으며 SF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이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9장에는 군에서 경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가상 이라크와 가상 아프가니스탄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가상현실 속에서 노출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런 부분은 SF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3의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떠오르게 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서 군인들이 PTSD를 겪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해 특정한 사람들을 ‘벌레’로 보이게 하는 기술이 사용되는데 9장에서 등장하는 가상현실을 통한 치료의 연장선상에 있는 상상력으로 읽힌다.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현실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에 관한 연구도 진행 중인데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고 한다. 가상현실 속에서 소가 되는 경험을 통해 신체 전이와 감정 전이를 느낀 저자는 이후 동물권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앞으로 가상현실 속 경험이 교육적으로 쓰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증강현실 장치는 몸에 착용하거나 손으로 들고 사용하며, 이런 장치들은 사용자의 인식을 변형하거나 장치가 없었다면 몰랐을 정보를 제공한다. 증강현실 연구는 초보 단계이기 때문에 시계, 반지, 휴대전화 앱, 안경 등과 같은 액세서리와 관련된 제품이 출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기기들은 인체의 일부처럼 쓰인다는 점에서 인간과 기계의 혼합인 사이보그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사이보그화는 인간의 능력이나 감각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위치를 추적하여 정보를 제공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97%에 달한다고 한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스마트폰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이런 정보들은 기업의 마케팅 정보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증강현실 장치가 널리 쓰이게 된다면 사생활 침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새로운 감각(11장)은 실제로 신체를 개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이식은 자석 이식이었다. 아직 자석을 몸에 이식하면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자기장을 인식하고 마치 지도처럼 쓰는 조류들처럼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여 계속 연구 중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혹은 감각과 관련된 과학기술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이런 연구들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의 연구 사례이니 이런 기술들이 언제쯤 우리나라에 들어와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이 난다. “인간 이상의 존재, 다시 말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뭔가를 할 수는 없어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뭔가를 경험할 수는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바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우리의 한계를 향해 나아간다.”(441쪽)
그러나 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들이 흥미로우면서도 불편하다. 그 이유는 이 기술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들 때문이다. 이 기술을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을까? 앞으로 무엇을 더 희생시킬까? 이런 첨단기술이 결국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