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내게는 훌륭한 스승이 한 분 있으시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의 책은 여전히 가르침을 준다.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순간이 오면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다시 편다. 삶의 지침이 그 안에 있다. 선생님의 책은 경전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 읽었다. 당시의 나는 소위 ‘문학소녀’였다. 가을이 오면 시집을 끼고 시를 외우며 지천을 걸어 다녔고 쉬는 시간에는 소설을 읽었다. 그랬던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본 어느 책에서 추천을 해 주었던 것도 같다.
사춘기 소녀에게 감옥은 낯선 공간이었다. 감옥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인 줄 알았다. 신영복 선생님을 통해 ‘부당하게 감옥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통일혁명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신 신영복 선생님은 20년 후에야 출소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몸은 갇혀 있어도 정신이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다.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보다는 무익조의 비상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훨씬 훌륭한 자세이다.
인간의 적응력, 그것은 행복의 요람인 동시에 용기의 무덤이다.
인내는 비겁한 자의 자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쟁은 그것을 멀리서 맴돌면서 볼 때에는 무척 두려운 것이지만 막상 맞붙어 씨름할 때에는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어떤 창조의 쾌감 같은 희열을 안겨주는 것이다.” (24쪽, ‘단상 메모’)
이 책은 1969년부터 1988년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감옥에서 선생님이 보낸 편지와 메모 노트가 실려 있다. 증보판 서문에 의하면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에다 깨알같이 박아 쓴 글”이라고도 한다. “원본 엽서는 연필로 쓴 것도 있고 볼펜으로 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철필로 먹물로 찍어서 쓴 것들”이라고 한다.
사춘기 시절에 이 책을 처음 접했지만 그 후로도 여러 번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새롭게 와닿는 구절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꼭꼭 눌러쓴 편지에 시종일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감옥을 홀로 은둔하는 고독한 공간으로 삼지 않고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장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나’를 넘어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배운 사람’이라며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각자가 가진 삶의 가치를 그대로 존중할 줄 아는 시각을 가진 분이 몇이나 있을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신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97쪽, ‘창녀촌의 노랑머리 - 계수님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반성한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는지.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하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는 않았는지.
내 이야기가 울림을 갖지 못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보이지 않는 감옥을 짓고 그 안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았나. 몸은 자유롭지만 마음은 갇혀 있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반성의 끝에 열린 장으로 향하는 자유를 얻기 바라며 노력하고 싶다.
* 이 글은 과거 반디앤루니스 펜벗 활동 중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