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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Sep 11. 2023

INTJ의 외국에서 친구 사귀기

주재원의 아내는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 혼자 덩그러니 집 안에 남은 나는 그 고요하고 긴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동안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회사와 육아로 늘 꽉 찬 삶을 살았다. 회사 내 자리와 휴대폰으로 동시에 걸려오는 전화,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메신저 창, 끊임없이 자리로 찾아오는 사람들, 타 부서 및 에이전시와의 줄미팅... 정신 차려 보면 5시가 넘어 있어 5시 이후에는 자리 전화 코드를 빼놓고 일한 날도 많았다. 퇴근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 집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육아. 아이와 좀 놀고 씻기고 재우면 어느새 11시. 그래서 인도에 간다고 했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혼자 있는 시간과 인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그 질이 달랐다. 아무에게도 연락 오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삶은 너무나 조용하고 지루했다. 두 발로 걷는 자유가 없는 나라여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니면 육아를 하는 주부의 입장에서 쉽게 갈 수 있을 만한 박물관 등의 시설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내 MBTI가 맞는 것인지 의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혼자 있고 싶다던 생각은 어디로 가고 누군가를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 


 규모가 큰 회사는 주재원이 부임하면 주재원 아내들끼리 새로 온 사람을 환영해 주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남편 회사는 작은 법인이고 다른 주재원 아내분들도 나보다 한참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힘들었다. '대체 어딜 가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이 나이에 친구 사귀는 고민을 하고 있다니... 이런 종류의 고민은 살면서 거의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아 더욱 당황스러웠다. 좀 부끄럽지만 네O버에 친구 사귀기 검색도 해봤다. 그러면서 나름 터득한 주재원 아내, 아니 외국에 사는 아이 엄마의 친구 사귀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였다. 



1. 적극적인 학교 일 참여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고 즉각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국제 학교는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봉사 참여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원하기만 하면 학교 행사에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많다. 학교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좋은 점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학부모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 살고 있으니 친한 외국 친구 한두 명 사귈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매우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2. 종교 활동 

 이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특히 한인 교회는 세계 곳곳에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꽤 많은 편이라 종교적인 신념만 맞다면 꽤 좋은 선택지이다. 종교라는 하나의 믿음으로 뭉쳐 있으니 더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점도 좋은 점이다. 다만 종교는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오로지 친구와 지인 사귀기의 목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3. 커뮤니티 참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요가, 댄스, 수영 등 각종 스포츠 관련 클래스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런 클래스에만 꾸준히 참석해도 같은 아파트 주민들을 쉽게 사귈 수 있다. 같은 층이나 동에 사는 사람들과 엘리베이터 등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친구 사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이라면 좀 뻘쭘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외국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에게 용기 내어 말 걸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한인회에서 운영하는 각종 취미 활동 커뮤니티도 있다. 


 이렇게 세 가지 방향으로 친구 사귀는 방법을 정리는 했지만 문제는 어떻게 첫 한마디를 꺼내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극 I의 인간이다. 먼저 가서 말 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누군가가 항상 말을 걸어줘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편이다. E 성향의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게 쉬울지 몰라도 I 성향의 사람은 정말 수십 번 시뮬레이션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외국에서는 친구를 만들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다가서는 수밖에 없다. 손 놓고 있으면 아무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용기를 내는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한 가지 있다. 내가 먼저 용기 내어 말 걸었을 때 사람들은 생각보다 좋아해 주더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그 사람들도 마음을 더 연다는 것. 외국이라 모두가 마음 한 구석은 외롭기 때문일까? 내가 먼저 손 내밀었을 때 마다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마다한들 어떤가. 그냥 그 사람은 내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뿐인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에 불필요한 두려움과 걱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고요한 세계는 어찌 되었냐고? 주재원 임기 동안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수나 있을까, 이 지루한 시간을 어찌 보내나 하고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잘 살고 있다. 누군가가 항상 만나자 하고 카톡 메시지도 쉬지 않고 온다. 고요한 줄 알았던 이곳이 사실은 사람들로 가득 찬 시끌벅적한 세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삶이 나쁘지 않다. 난 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삶도 꽤 즐겁다. 그리고 감사하다. 괜찮은 인연들이 내 곁에 와서. 다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가 내 인생에 나타나 줘서.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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