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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Aug 20. 2024

아이를 존중하는 사회

외국에서 아이 키우기 

  아파트 단지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음악, 미술, 태권도, 발레 등 예체능 학원, 아이들 맞춤형으로 예쁘게 꾸며진 키즈카페, 동네마다 있는 어린이 박물관과 도서관 등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에 살 때는 이런 시설들이 주는 손쉬운 편리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니 인도에 와서 너무나 당황할 수밖에. 처음에는 한국의 다양한 사교육 시스템과 모든 것이 편리하게 다 갖춰진 쇼핑센터를 포기하고 온 것을 후회했다. 인도는 아이가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없는 나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분위기였다. 인도는 키즈카페 등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한국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물론 집 주변에 공원도 흔치 않은 상황이지만,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면 항상 환영하고 반겨 주는 분위기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식당을 갈 때, 아파트 단지에서 놀 때 눈치 주는 시선이 없다. 식당에서 자리를 안내해 주는 점원이나 아파트의 시큐리티 가드 등 아이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한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동네의 슈퍼마켓에 가면 어린이용 작은 카트가 있다. 장 볼 것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날 아이와 함께 슈퍼마켓에 가게 되면 나는 직접 카트를 끌지 않는다. 대신 아이보고 어린이용 카트에 엄마가 사는 물건을 넣어달라 부탁한다. 아이는 신나게 카트를 끌며 뭐 더 넣을 것이 없는지 물어본다. 엄마가 아무렇게나 담아 놓은 물건을 자기 나름의 질서대로 차곡차곡 다시 정리하기도 한다.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는 신이 나는 것 같다.  

아이도 같이 장보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내가 자주 가는 몰에는 아이와 함께 꼭 들르는 목욕용품 가게가 있다. 내가 향수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이도 나와 같이 향을 맡고 서로 추천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는 곧 만 8세가 되는데 그런 가게에 가면 'Try me'라고 쓰여 있는 상품만 조심해서 시향 해보고 뚜껑을 열기 어렵거나 잘 사용하기 어려울 때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놀라운 것은 점원의 태도이다. 점원은 어른 손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아이를 응대해 준다. 아이니까 행동이 서툴 때가 있어 뚜껑 여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향수를 뿌려 주기도 한다. 아이는 조용히 자기가 좋아하는 향을 맡고 나는 아이가 말썽을 부릴까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가게에서는 조심해서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것을 배운다. 


 방학 때 여행 다녀온 미국과 영국에서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놀라웠던 점은 거의 모든 식당에 키즈 메뉴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른 메뉴보다 가짓수는 적지만 어떤 아이도 좋아할 만한 대표적인 메뉴로, 가격과 양은 어른 메뉴의 반 정도 되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이는 키즈 메뉴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엄마 아빠가 시킨 음식을 조금씩 덜어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만의 식사를 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했다. 


 또한 아이가 식당에 자리 잡고 앉으면 거의 모든 식당에서 색칠공부를 하며 놀 수 있는 종이와 크레용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 New Haven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척들과 함께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동네의 브런치 가게에 갔는데 우리 아이와 조카가 자리에 앉자마자 색칠공부 종이를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색칠공부에 심취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어른에게 딸려온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 작은 손님으로 대접해 주는 느낌이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 런던의 Fortnum & Mason. 아이는 색칠공부를 하며 자기 몫의 애프터눈티 세트를 즐겼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제법 장거리를 여행할 일이 있었다. 기차표를 예매해서 왔는데 막상 기차에 타고 보니 우리 자리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서 예매되어 있었다. 나는 Washington D.C부터 New Haven까지 비교적 긴 거리를 기차를 타고 여행해야 했고 아이와 내 옆의 승객들은 자주 바뀌었다. 나는 내성적이기도 하고 남에게 부탁 같은 거 잘 못하는 성격이라 좀 불편하지만 자리가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으니 떨어져서 가자고 아이와 미리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동안 기차가 달리던 중, 필라델피아에서 한 청년이 기차에 탔고 그 청년의 자리는 우리 아이 옆자리였다. 청년이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드리라고 복도 쪽에 앉아 있던 아이를 일으켜 세우자 청년이 자기는 뉴욕까지 가는데 아이와 함께 가라며 자리를 바꾸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Are you ok?" 하고 물어봤더니, "Sure, why not?" 하며 흔쾌히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나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고마운 청년은 뉴욕에서 내렸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탈 것이므로 나는 얼른 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 탔다. 나를 보더니 역시 환하게 웃으면서 아이와 함께 앉으라고 자리를 바꾸어 주겠다고 한다. 내가 탄 칸에 유독 친절한 사람이 많이 탔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는 너무도 고마운 배려를 뜻밖의 선물처럼 받고 따뜻해진 마음으로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자리가 하나밖에 없어 나는 서서 가고 아이를 앉혔는데 아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자기는 곧 내린다며 같이 앉으라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아이와 함께 다니니 내가 오히려 더 배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또는 식당을 갈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라 아무 데서나 울고 드러누울 나이도 아니고, 가끔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뛰어다니긴 하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뛰면 안 된다고 말하면 그만둘 줄 아는 나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잠재적 말썽꾸러기로 보는 주변 시선 때문에 유독 더 눈치 보고 과도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주로 이용했던 곳은 키즈 카페, 어린이 박물관 등이었다. 그곳은 확실히 아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뛰면 안 되고, 떼쓰고 드러누워서는 안 되며,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는 힘들었다. 


 한국은 아이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보는 느낌이 아니라 피해를 줄 수 있고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는 물론 시끄러울 때도 있고 통제하기 힘들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려면 사회 속에서 해도 되는 것 안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걸 배울 수 있도록 당장은 불편하지만 조금 참고 기다려 주는 게 세상을 먼저 산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 아닐까.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관용의 시선이 너무나 부족하다. 시끄럽고 통제 안 되는 취객들도 있는데 유독 아이들에게 더 너그럽지 못한 것 같다.


 한국에만 있는 '노키즈존'도 나는 이해할 없다.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이 거북하고, 일부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 때문에(정확히는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모든 아이들을 피해를 끼치는 존재로 보고 거부하는 것이 폭력적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세상이라지만 인간의 평등권보다 돈이 더 우선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인종 차별과 다를 바 없다. 마치 아무 이유 없이 '40대는 들어올 수 없음'이라고 써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아이들은 '노키즈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어려서부터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 과연 어떤 가치가 중요하다고 배우며 자랄까. 나는 정말 너무 걱정스럽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 게 이럴 때는 정말 다행이지만, 몇 년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아이 키우기 좋은 시스템과는 완벽하게 별개인 아이를 반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출산을 점점 하지 않게 되는 너무도 자명한 이유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노키즈존 이야기를 하니 너무 놀라면서 만약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부모들이 다 들고일어날 거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왜 아이들을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되는데 '바쁘게! 빨리!'를 늘 외치는 한국 사회는 유독 여유가 더 없는 것 같다. 내년에 한국에 잠시 가게 되면 나부터라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상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대해보리라 생각한다. 내가 여행 중 받았던 배려를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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