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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Aug 20. 2023

슬기로운 인도 집밥 생활

인도에서 소고기 구하기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그 나라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관광지를 직접 가보는 것에도 있지만, 그 나라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맛있는 인도 커리와 난, 탄두리 치킨 등 어느 정도의 기대를 품고 갔지만 그건 2주로 끝. 인도에 도착한 지 2주 후 여행자 모드에서 거주자 모드로 스위치를 돌리고 나니 이것 참 큰일이다 싶었다. 내가 한국에서 집밥 할 때 항상 구매했던 생선, 소고기, 돼지고기는 슈퍼마켓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베지테리언의 나라이자, 내가 살고 있는 델리 NCR 지역은 내륙 지방이라 바다 생선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설사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도의 믿을 수 없는 냉장/냉동 유통 시스템 때문에 먹어도 안전한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한국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캔참치와 통조림 햄을 사 오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인도 도착한 지 이틀 째 저녁을 먹으러 간 팬시한 인디안 레스토랑. 너무 맛있었지만 난 한국 사람이니 이것들을 매일 먹고 살긴 힘들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는 닭고기와 양고기뿐. 내가 인도에 사는 동안 이 두 가지 고기 말고 다른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우울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돼지고기와 바다 생선을 델리의 한 재래시장에서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찾아간 시장의 상황은 이랬다. 

시장 양 옆으로 늘어선 생선 가게와 빨간 고기 가게들. 그런데 가게 안에 냉장고, 냉동고를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죽음을 알까 모를까. 도살되길 기다리는 살아있는 닭들. 물론 닭고기는 깔끔한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돼지고기도 팔고 있었는데 한국처럼 정육점 냉장고에서 꺼내 파는 게 아니라 거대한 돼지를 매달아 놓고 부위별로 그 자리에서 잘라주는 방식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매달린 돼지가 죽은 지 얼마나 된 건지 알 수 없다는 것. 게다가 내가 갔던 시기는 인도의 여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위생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돈까스용 고기와 수육 거리를 잔뜩 사 갈 생각에 부풀었던 나는 남편의 만류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소고기다. 내가 한국에서는 이렇게 소고기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타지에 나오게 되니 한국 음식과 익숙한 식재료를 고집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인도에서는 소가 지천에 널려 있지만 소고기를 구하기는 힘들다. 인도 사람들 대부분이 믿는 힌두교의 최고신 시바가 타고 다니는 동물이 소라 인도 사람들은 소를 신성하게 여기며 당연히 살육도 금지되어 있다. 다만 신성하게 여기는 소가 아닌 버팔로(Buffalo, 물소)는 먹을 수 있는데 그 식감도 냄새도 익숙하지 않아 한두 번 시도해 보고는 다 갖다 버렸다. 우울한 나날이 지속되려 할 무렵 이웃의 호주 엄마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 


 그녀가 소개해 준 사람은 수입 소고기를 파는 butcher(Halal)였는데 아마도 할랄 식품을 파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주문하기 전 왓츠앱으로 버팔로인지 비프인지 물어봤는데 버팔로가 아닌 수입 비프라는 답변을 받았고, 그 수입 경로를 소상히 밝혀내고 싶었으나 왠지 꼬치꼬치 캐물었다가는 주문을 금지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나만의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 이상은 질문하지 않았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주문해 봤는데 놀랍게도 냉장 소고기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냄새도 내가 아는 그 소고기와 똑같았다. 어떤 경로로 소고기를 도축하는 것인지, 무항생제인지 아닌지(당연히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알 수 없지만 불고기 사진을 보내주니 한국에서 썰어주는 얇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얇게 불고기감도 썰어 주고, 갈비찜용 갈비도 잘라준다. 사실, 어떤 소인지 경로를 알 수 없는 것이 꺼림칙해 어쩌다 한 번 시켜 먹으려고는 하지만 인도에서 소고기를 구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못 사는 것과 안 사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할랄 가이에게 주문한 스테이크용 고기와 민스 고기. 지방을 어느 정도 섞어 달라 하면 알아서 섞어서 썰어 준다.


 한국에 살 때는 고기를 먹지 않는 날은 생선을 먹었고 생선이 없는 날은 두부라도 구워 어떻게든 단백질을 식탁에 올렸다. 그만큼 풍족한 식생활을 했다는 걸 인도에 와서야 알았고, 닭고기 말고는 익숙한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한동안 우울했었다. 그러나 소고기를 구할 수 있는 지금 나는 두려울 게 없다. 내가 인도에 사는 동안 할랄 가이의 사업이 번창해서 언제든 급할 때면 소고기를 주문해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생닭에 놀랐던 그 재래시장은 한여름을 피해 가면 좋은 생선과 새우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인도의 여름이 끝나는 대로 해산물 쇼핑을 하러 가야겠다. 벌써부터 새우 소금구이와 고등어 조림 해 먹을 생각에 신난다. 인도에서 한국 식재료 구하기 mission compl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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