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닥스훈트의 투병일지
할머니가 간병인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간병인을 기다렸다. 간병인은 한 손에 투명한 일회용 컵을 들고 나타났다.
간병인이 할머니의 물음에 호탕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할머니도 같이 웃어 보였다. 꼭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신뢰가 가득했다.
할머니의 말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학장에게서 졸업장을 받아 드는 대학생의 모습처럼 유쾌해 보였다.
간병인이 할머니의 볼에 부드러운 키스를 남겼다. 할머니는 간병인의 손에 들려있던 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많이 쓰다”는 간병인의 당부에도 할머니는 “한두 모금만 마시고 죽지 않을 거야. 다 마시고 죽을 거야”라며 여유 있게 농담을 건넸다. 할머니가 천장을 보며 꿀꺽꿀꺽 약을 삼켰다. 컵이 금세 비워졌다.
간병인이 두툼한 밀크 초콜릿 한 조각을 건네자 할머니가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할머니는 초콜릿을 음미하며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초콜릿을 잡고 있는 손아귀의 힘도 약해졌다.
그 말을 끝으로 시폰 커튼이 내려가듯 할머니의 눈꺼풀이 감겼다. 할머니가 영원의 강을 건넜음을 알 수 있었다. 후회도 미련도 없어 보였다. 할머니가 맞이한 품위 있는 죽음은 ‘안락사’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이 영상은 조력 자살을 시행하는 스위스 비영리 단체인 ‘디그니타스’에서 촬영됐다. 스위스에선 ‘조력 자살’이 합법이다.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직접 복용하는 방식으로, 의사가 약물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일반적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사만 명확하다면 고통 없이 약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다.
이제 고작 30대지만, 항상 죽음에 대한 완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선 불법이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시한부 통보를 받은 환자의 명줄을 온갖 치료로 연장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고통을 연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18살 무렵 발목뼈 한가운데 종양이 생겼다. 양성 종양이라 뼈에서 제거만 하면 완치가 가능한 수술이었다. 수술 당일 콩벌레처럼 몸을 말아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맞았다. 수면 마취가 풀렸을 때, 창살 없는 감옥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아픈 몸은 의지를 산산 조각냈다. 절개한 발목 상처에서 피를 뺄 때도 고통스러웠지만, 강력한 진통제를 투약하자 온종일 두통, 구토, 메스꺼움에 시달려 정신이 가루가 될 것 같았다. 침상에 메여있을 때도,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도 몸은 속박이었다. 아마 불치병이었다면 주저 없이 “편하게 죽게 해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안락사’가 누군가에게 해방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먼 훗날 병상에 또다시 눕게 됐을 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유한한 삶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이런 신념이 바탕에 깔려있었기에, 탁구의 보호자가 된 나는 주저 없이 안락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영상 속 할머니가 안락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한 ‘조력 자살’이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약물을 처방했지만 그것을 마시는 것은 할머니 본인이었다.
반면 동물은 명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 스스로 약물을 마실 수도, 주입할 수도 없다. 보호자란 이유로 삶의 의지마저 강제로 앗아가는 것이 맞을까. 과연 안락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이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오랜 신념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