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닥스훈트의 투병일지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애처롭게 묻는 나를 멀건 눈으로 응시했다. 마치 선택권은 내게 있다는 듯이. 그 시선의 의미를 알기에 고개를 돌렸다. 장대비가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오늘이야.’ 빗줄기마저 삼지창이 되어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축 처진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습관적으로 탁구부터 찾았다.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밤새 편안하게 눈을 감았을지도 몰라.’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탁구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알밤 같은 동공엔 온기가 가득했다.
지난 밤, 가장 어려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야 했다. ‘안락사를 하는 것이 맞을까.’ 인터넷에 접속해 집요하게 정보를 찾았다. 그러나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반려견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지만 친구도 알지 못했다.
오후 8시30분. 예약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14년이라는 긴 시간을 탁구와 함께했다. 그 목숨을 거두는 덴 고작 14초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럴 권리가 내게 있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걸 탁구는 알고 있을까.
몇 시간째 탁구 앞에 앉아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탁구의 숨이 인공 호흡기를 뗀 환자처럼 불규칙했다. 눈이 서서히 감기더니 중심을 잃은 나침반마냥 허공을 향해 뒤집혔다. 짧은 경련이 숨을 앗아갈 듯 고동쳤다.
초점을 잃고 헤매던 동공은 자석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탁구가 목젖을 헐며 처절하게 힘을 쥐어짜는 소리를 냈다. 온 힘을 다해 측면으로 향해있던 얼굴을 정면으로 돌렸다. 맑은 고동색 눈동자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너를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짝거렸다.
그 찰나가 영원처럼 길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 전해졌다. 잿빛 먹구름 사이로 실낱같은 구원의 빛줄기가 내려온 것 같았다.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 이 곳, 내 곁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이다.
엄마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엄마가 내심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에 암묵적으로라도 동참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엄마도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일까.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단숨에 말을 내뱉었다.
수의사도 엄마와 같은 말을 했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마취제를 먼저 주입한 후, 심장을 정지시키는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병원마다 방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보호자가 곁에서 임종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를 끊었다. 고작 일주일이 남았다고 하는데, 그 누구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에서도 해방됐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잠자다 편하게 가게 해줄 것이다.
그땐 몰랐다. 그날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적기였음을.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을 때 장기들을 하나하나 파 먹히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그 직후에 다가올 나흘은 살아있는 악몽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본 후에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