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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준 Dec 31. 2019

2019년 마지막 날에

2019년 12월 31일의 글

 무슨 말부터 글머리에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끼적대다가, 2018년 12월 31일의 나에게 조금 빚을 지기로 했다. 12월 31일은 별다를 것 없는 하루 중 하나지만,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주술은 무엇이든 맺고 끊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2019년이라고 다를 리 없다.


 작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엄청난 일이야!'라고 할만한 사건들이 몇 있었다. 덕분에 '어떻게 일하는가'에 집중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무엇을, 어떻게 이루었는가'에 마음이 간다. 2018년 마지막 날과 같이, 2019년 마지막 날 역시 이를 곱씹으며 잊지 말아야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하나, 일잘러는 아닙니다만, 일을 잘하고 싶었다.

  일터를 성장의 터전으로 가꾸는 것이 오롯이 내 몫임을 깨닫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7년이라는 경력이 켜켜이 쌓인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체념도, 관성도, 타협도 아닌 '쟁취'다. 직장이란 본디 사람이라는 복잡다단한 소우주의 집합체, 각자의 바람이 얽히고설킨 곳에서 나 혼자 뻗대 봐야 금세 고꾸라지기 일쑤더라. 고로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떠나는 대신, 온갖 케케묵음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만의 영토를 확장해 보기로 했다.


 양껏 너스레를 떨지만, 당장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은 내 앞에 놓인 일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뿐이다. 결핍과 갈망은 언제나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기에. '원래 그런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해보기도 하고, 그간의 방식을 고수한 이유를 캐묻는다. 나름대로 '우리의 일'을 다시 정의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일'의 경계를 기준 삼아 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가늠하기도 한다. 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생색을 내기보다,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일의 A to Z를 따라다니며 '일이 되게끔' 돕는다. 이런 딴짓을 마음껏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지만, 고루함을 이해해야만 새로움을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미련해 보이더라도 귀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2019년에 그랬던 것처럼, 2020년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뻗어봐야지. 



두울, 내 명함은 바뀌었지만, 내 일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올해 남긴 가장 큰 자산은 단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점'을 발굴한 것이다. 2018년이 그 공집합을 탐색하는 시간이었다면, 2019년에는 그렇게 성기게 쌓은 모델이 실제로 작동함을 확인했다. 여전히 시행착오도 많고, 몇몇 파트너분들께는 면목 없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적지 않은 혼선이 있지만, 잘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이 결과를 '파괴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B2C/B2B 지식 콘텐츠 시장이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의미 있는 레퍼런스로 기능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그리고 이 가능성이 기술(Technology)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걸 해보겠다고 결국 조직에 남았고, 그 과정에서 소속과 직함이 바뀌었다.


 하지만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내 일에는 변한 것이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육성의 대상'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 된 것 정도.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어진 일에 쫓기는 직원 1'이 아닌, '나만의 미래를 그리는 일잘러'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내 손때가 묻은 일에서 나만의 색이 배어 나오는 거, 일잘러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 아닐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로망을 실현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2020년에도 익숙함 대신 힘겨루기와 실랑이를 감수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세엣, 이름을 걸고 글을 쓸 수 있었고,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

  올해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단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작년에 이어 에디터로서 월간 연구리포트를 엮어냈고, 내 글도 실었다. 이어 공저자로 참여해 책을 내기도 했고. 감사한 기회로 '일'에 대한 에세이를 연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년 여름 출간할 책을 위해 낑낑대며 글을 쓴다.


  언젠가 남겼던 한토막 글처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글을 읽고, 쓰고, 다듬는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더듬더듬 기억을 더듬어가며, 고르게 늘어진 단어들을 골라가며 한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온전히 정제하는 것. 그것이 '일'이 되면 괴로운 부분도 있지만, 그 본질은 다른 이나 나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인지라 참 재미가 있다.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공감하기도 하고, 글쓴이의 '맛'을 느낄 수도 있고.


 그 '맛'이라 함은 글쓴이의 '향기'와 다름없다. 글에 담긴 향기를 좇다 보면 글쓴이의 자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있다. 비록 그것이 글쓴이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향기'란 본디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하지 않으니까. 딱딱한 글이든 말랑말랑한 글이든, 내 글에도 나라는 한 존재가 진하게 배었으면 좋겠다.



  1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세 꼭지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름 꾹꾹 눌러 담는 재미라는 게 있다. 감상적인 문구들이 좀 삐져나오는 것 같지만, 그게 또 연말에 쓰는 글 맛이 아닐지. 까칠까칠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하다, 또 한 번 과거의 나에게 빚을 질란다. 2020년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두 가지 문장을 가슴에 품고 달려볼 생각이다.


첫째. 성적표를 기대하는 학생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둘째. 평론가가 아닌 실천가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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