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
멕시코라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것에는 사실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진 않았다.
멕시코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단지 선인장, 사막, 그리고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칸쿤 정도. 딱히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오던 곳도 아니었고,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를 여행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멕시코에서 지낼 시간에 대한 부단히 현실도피적인 작은 기대였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막연히 여행 스페인어를 배워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마무리지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스페인어는 커녕 멕시코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제대로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게 아무 준비없이 여행을 가도 되나에 대해서 의심조차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상태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가져 왔던 멕시코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멕시코의 공항은 회색 빛만 가득하였고, 미지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공항은 한국 전자제품 광고들이 가득했다.
최악으로 날씨마저 매우 추웠다. 내가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한 건 새벽 3시였고, 예약한 숙소에는 7시가 넘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새벽에도 문을 여는 커피숍이 있어 따뜻한 커피를 살 수 있었다. 혹시나 소매치기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하며 가방을 꼭 끌어안고 아침이 될 때까지 공항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해가 뜨자마자 찾아간 숙소는 멕시코시티의 번화가에 위치한 한인 게스트 하우스였다.
멀리까지 와서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치안이 안좋다는 인식이 있는 이 나라에서 언어도 안되고 정보도 제대로 찾아보지 못한 혼자여행자가 멕시코 여행을 시작하기엔 아무래도 한인 민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한인 민박은 조식 준비와 막 깨어난 여행자들로 분주했다.
어린 친구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는 의외로 20-30대 배낭여행객이 절반, 중년부부들과 혼자 여행 온 50대 여행객이 절반이었다. 제대로 통성명을 하기도 전이었지만, 마침 오늘 피라미드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낯선 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도시를 벗어날수록 창밖에 보이는 장면들은 내가 상상했던 멕시코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과 선인장들. 멕시코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기에 연신 핸드폰을 들이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두시간 여를 달려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멕시코의 첫 여행지, 피라미드 테우티오아칸. 서른 셋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피라미드의 첫 인상은 말그대로 대단했다. 한 눈에 둘러볼 수 없는 광활한 규모의 피라미드. 차가웠던 밤공기는 온데간데 없고 후덥지근한 공기와 모래바람, 뜨거운 태양으로 가득했다. 기념품을 파는 멕시칸 상인들이 내는 동물(호루라기) 소리마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관광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피라미드에 오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가파르고 위험해보이는 계단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오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어설프게 묶여있는 밧줄을 잡고 천천히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오른 여행자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라미드를 즐기고 있었다.
일기를 쓰거나, 모서리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거나, 그 옛날 제사를 올리던 아즈텍인들의 방식으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가득 벌리기도 하였다. 뜨거운 햇빛에 금새 녹초가 되었지만 인생에서 처음 만난 피라미드에 대한 설레이는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살이 타 들어가는 강한 햇빛보다 두근거림이 더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