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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06. 2019

HBO 체르노빌(2019) : 압도적인 진실의 무게

1986년의 체르노빌이 2019년의 우리에게 묻는다


1986년 4월 26일, 내가 태어나기 1년 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를,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던 그 사건을 나는 잘 몰랐다. 그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저기 러시아 쪽 어딘가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또, 누군가는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노력했다는 것도.


 그랬기에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첫 5분부터, 나는 '체르노빌'이라는 실화의 묵직함에 즉각 압도되어 버렸다. 면에서 보이고, 들려지는 모든 것들이 전부 내 상상의 한도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비극적 도입부.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란.


 HBO의 <체르노빌>은 단 5편의 에피소드로, 체르노빌 참사의  당시 상황을 조금의 낭비도 없이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충실한 고증도 물론이다.


 1화에서는 모든 참사의 발단인 원전 폭발 직후의 참혹한 모습과 미흡했던 초기 대응, 그리고 그 현장을 수습하러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2화는 최악의 상황을 신속히 수습하고, 닥쳐올 더 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고 수습위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희생하자는 판단이 내려진다. 본격적인 사태 수습의 분기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3화에서는 핵연료의 지하수 침투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맨 몸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광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그려진다.



4화에서는 군인들이 체르노빌 지역을 제염하고 정화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고뇌를 보여주며, 지붕 정화작업에 투입된 대량의 바이오 로봇(즉, 인간)의 처절한 작업 현장을 보여준다. 바이오 로봇을 쓸 수밖에 없었던 계기 또한 국제 사회에 원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조차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소련 정부가 꾸며낸 거짓 때문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5화에서는 체르노빌 참사 수습 이후, 바로 그 땅에서 열린 역사적 재판을 재현한다. 레가소프 박사가 사태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소련 정권과 KGB의 회유와,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울라나 호뮤크 박사의 진심 어린 설득 사이에서 고뇌하다 결단을 내리고 체르노빌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까지의 모습을 다룬다.



 사실 클라이맥스인 5화의 재판 장면은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존인물이었던 레가소프 박사의 비극적인 자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그로 인해 소련이 RBMK 원자로의 결함을 인정하고 동료 과학자들에게 그의 뜻을 전파한 점 또한 실화다. 레가소프 박사가 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고 되어야만 했던 모습을 표현한 것이리라.




소비에트 정권의 선전 선동 문구 : “우리의 목표는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함이다”


 HBO <체르노빌>은 분명 ‘잘 만든(well-made)’ 드라마다. 참사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의 패닉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재현했다. 한 순간 한 순간 숨이 막힌다. 이와 같은 극도의 몰입감은 아무 콘텐츠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형참사였던 만큼 관계된 당사자도 많고 각 등장인물 별로 다뤄야 할 이야기도 많아 복잡했을 텐데, 어떻게 이토록 짜임새 있고 몰입도 있으며 입체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사람은 본인의 인식을 넘어서는 범위를 감히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매우 비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86년의 체르노빌을 2019년의 시청자들에게 이토록 현실감 넘치게 재현할 수 있는 제작진의 능력은 매우 비범하다고 다.




 인류의 대재앙이자 어찌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체르노빌'을 다루면서 고작 5부작으로 압축적으로 스토리를 끌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담담하게 넘긴 덕분인 듯하다.


 만약 다른 영화나 드라마였더라면, 어떤 캐릭터라 해도 국가와 민족이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쉽사리 결정을 내리도록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룬 한국 영화 <판도라>에서도, 주인공은 본인의 가족을 두고 끊임없이 고뇌한다. 어찌 보면 해당 영화는 대의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기회비용인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을 함께 조명하며, 그 사람이 얼마나 어렵게 결단을 내리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속 희생자들의 모습은 달랐다. 목숨을 건 자원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나서거나, '이걸 해결하면 나라에서 우릴 돌봐주나요?'라는 말에 '그렇다'라는 확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씩 웃으며 다시 할 일을 하러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산뜻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것이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만큼, 개개인의 감정 묘사에 초점을 맞춰서 5화의 짧은 러닝타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과감히 생략한 드라마적인 기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으며 실제 역사 속 체르노빌 참사의 수습 역시 이와 같은 수많은 '덤덤하고 의연한 희생'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유럽 서민들은 러시아 혁명, 우크라이나 대기근, 독소전쟁 등 수많은 전쟁과 고난을 버티며 살아온 민족이며, 재난과 고난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슈체르비나가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이 학살된 '체르노빌'을 피에 젖은 땅이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고난의 역사가 그들로 하여금 고난 앞에 보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민족성을 부여했다 해도, 그들의 희생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의 희생에 비해 결코 그 무게가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모든 희생을 거룩하고 영웅적인 행위로 '포장'하여 위인화하는 것이 진리인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참사가 발생한 초반이 아닌 체르노빌의 실상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후의 수습기에는 영문을 모르고 체르노빌 수습 인력으로 차출되어 간 사람들도 있었고, 동원되는 과정에서 위궤양 등 진단서를 끊어오거나 어린 자식들이 있다며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는 '영웅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바이오 로봇'이 되기를 자원한 사람도 있다.


 어찌 됐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비록 드라마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을지가 아닐까.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신격화된 그들이 사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누구나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서로를 구원하고 그 과정에서 또 희생되는 것은 결국은 언제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장 먼저 참사 현장에 달려갔던 소방관 남편을 잃은 루드밀라. 그녀는 형체조차 잃고 ‘방사능 덩어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남편을 끝까지 간호한다. 그녀는 당시 임신중이었다.




사실, <2012> 같은 가상의 재난영화는 얼마든지 '맘 편하게' 오락물로 즐길 수 있다. 스크린 속에서 재난을 피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나 '남'이며, 나와는 비슷한 듯하며 묘하게 나와는 다른 '영웅적'인 존재이다. 나는 안전한 의자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해피엔딩이라는 확실한 답을 향해 치닫는 그들의 고난의 여정을 편안히 즐긴다.


 그렇지만 실제 일어났던 일은 다르다. 실제 일어났던 일은 결코 '오락'으로 즐길 수 없다. 그것은 즐기기 위한 콘텐츠가 아니다. 기억하고, 되새기며, 그 사건의 기억과 남긴 유산을 후대로 온전히 전해주기 위한 것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2011년의 후쿠시마를 겪은 우리들에게 체르노빌이 과연 그저 과거의 역사로만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속에 비로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그 반복의 굴레를 끊어야 한다. 이와 같은 끔찍한 역사는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며, 그 방법은 이와 같은 콘텐츠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일 것이다. 레가소프 박사의 마지막 유지처럼, ‘우리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글을 쓰던 중, 한빛원전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게 되었다.


“최대 1.5미터 구멍…” 한빛 4호기 공극 102개 발견

점검 결과, 지난 7월 3일 주증기배관 하부에서 최대 깊이 90cm의 공극이 발생한 데 이어 이번엔 가로 331cm, 세로 38~97cm, 깊이 4.5cm에서 157cm의 공극들이 추가 점검에서 발견됐다.

격납건물은 168cm의 두께인데, 최대 깊이 157cm 공극이 발견된 건 사실상 11cm의 얇은 두께로 격납건물이 운영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빛원자력본부는 공극 발생 원인으로 건설 당시 콘크리트 다짐불량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빛 원전, 체르노빌 사고 직전까지 갔다"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참사 역시 터빈 출력시험 중 제어봉을 조작해 무리하게 출력을 올리려다 짧은 시간에 원자로가 폭주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빛 1호기는 그로부터 12시간 가까이 더 가동된 뒤 오후 10시 2분에서야 원안위의 정지 조치를 받고 멈춰 섰다. 각 원전마다 상주하고 있는 원안위 파견 감독관과 원자력 안전기술원 기술진이 사건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었는지, 적절한 통제·감독 업무를 수행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이처럼 중대사고가 발생했으나 원안위는 이를 일반 원전 고장정지처럼 대응했다. 원안위는 10일 자정이 다되어서야 한빛 1호기 원자로를 수동 정지한 후 점검에 착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벽에 159cm의 구멍이 뚫려, 10cm의 얇은 벽에 의지해 20년을 가동해온 한빛원전은 과연 제2의 체르노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위의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본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한가?


우리가 혹은 후손이 치르게 될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이 답을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그 답은 삼풍백화점 안에, 성수대교 안에, 대구 지하철 참사 안에, 세월호 안에,  후쿠시마 안에 있다.

우리의 답은 우리가 막을 수 있었던 참사와 함께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곧 1986년의 체르노빌이 2019년의 한국에 던지는 질문이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봤으면 하는 이유다.







체르노빌 원전을 봉쇄하기 위해 설치된 차폐막 옆에는 기념비가 서 있다.


하늘을 향해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손은 마치 가라앉은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고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그때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손을 모으고 하늘을 보며 기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 손은 당시 상황에 관련된 '누구'의 손이었을 수도 있다.


불을 끄려고 뭔지 알지도 못한 채 현장에서 흑연을 집어 든 소방관의 부풀어 오른 손일 수도 있고, 증기 폭발을 막기 위해 가득 찬 물을 빼내려 잠수했던 3명의 잠수부의 손일 수도 있다.


혹은 단 90초 만에 노동만으로 옥상에 흑연 조각들을 치워내야 했던 숨 막히는 노동을 해야 했던 바이오 로봇들의 손일 수도 있다.


맨몸으로 터널을 뚫기 위해 50도가 넘는 온도 속에서도 헌신했던 광부들의 손일 수도 있다.


혹은, 죽음으로써 진실을 밝히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노력했던 레가소프 박사의 마지막 손 일수도 있다.


오늘날의 체르노빌은 적어도 우리에게 그 '손'을 남겼다.


그 손은 우리에게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리고 진실의 무게는 얼마나 압도적인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미디어오늘] 언론이 원전 사고를 외면할수록 원전은 더욱 위험해진다


체르노빌이 한빛원전이나 다른 원자력 참사의 ‘예고편’으로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참사가 어떤 형태로든 이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다시는 리메이크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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