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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25. 2019

청춘 댄스 파트너(1985) : 에너지라는 게 폭발한다

30년이 흘러도 재미있는 열혈 청춘 댄스 무비


 VHS 시절, 대부분의 비디오테이프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테이프들이라고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한 녹화 테이프나, 복제 테이프, 혹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것을 모종의 이유(ex. 이사 등)로 미처 반납하지 못한 채 계속 가지고 있는 경우였다.


 대여점 비디오들이 분주히 들고 나던 어느 날, 어렸던 나는 TV장 서랍 한편에 쌓여 있던 녹화테이프들 틈새에서 테이프를 하나 발견했다.


청춘 댄스 파트너의 영어 원제는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다. Cindi Lauper의 노래 제목과 같다.


 핑크색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VHS에 서툰 글자로 써져 있던 <청춘 댄스 파트너>라는 비디오테이프가 어떤 이유로 내 집에 남겨져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 엄마가 놓고 간 것이 아니었을지 막연히 그 출처에 대해서 막연히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심코 틀었던 비디오의 내용이 어린 내게는 꽤나 강렬했던 것 같다. 화면을 가득 수놓던 춤사위, 폭발할 것 같은 여주인공의 풍성한 머리카락과 발랄한 몸짓, 음악, TV 오디션 등..



 마치 그 핑크색 테이프 케이스처럼, 혀로 핥으면 입 속에서 파박파박하고 입자가 터지는 것 같은 상큼 발랄한 이미지들이 필터링 없이 내 눈을 통해 쏟아 들어져 왔다. 나는 홀린 듯이 비디오를 보고, 심심할 때마다 보고, 생각날 때마다 또 봤다.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10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둘이 같이 한참 놀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혹시 야한 비디오 없어?'라고. 친구의 그 질문에 나는 이 비디오를 틀어줬고, 뭔가 대단한(?) 장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를 하고 봤던 친구는 기껏해야 5초 정도밖에 안 되는 키스신을 보고 대단한 실망을 하고 돌아갔다.


어린 내게는 남녀 주인공의 이 정도의 밀착도 되게 야해보였던 모양이다.


그때 내게는 어두운 배경에서 남자와 여자가 밀착하여 쪽쪽거리며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굉장히 야해 보였고 그래서 이 비디오를 보여줬던 건데... 키스신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다른 장면을 기대하다, 젊은 남녀가 건전하게 신명 나게 춤추는 피날레로 영화가 끝나자 그 친구는 정말 많이 실망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맹세코 그때까지 내가 본 남녀 장면 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야한 장면이었다! (물론 19금 영화는 물론 29금 영화도 볼 수 있게 된 나이가 된 지금은 얘기가 달라지지만...)


 이후로 시간이 흐르며, VHS 테이프를 보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비디오보다는 만화책을 빌려 보는 일이 더 잦아졌고, 중 2 때부터 컴퓨터를 쓰게 되면서 굳이 방송이나 드라마 녹화테이프를 만드는데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100번도 넘게 본 <청춘 댄스 파트너> 또한 자연히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굉장히 재밌었던 영화라는 것과 어린 나이에 봐도 감탄스러웠던 댄스 장면들은 가끔씩 불쑥 생각나긴 했지만.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9월 개봉을 앞두고 최근 홍보 중인 <틴 스피릿>이라는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고 문득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https://www.insight.co.kr/news/241000


정작 영화를 홍보하는 주체 측에서는 이 영화를 '10대 버전 라라 랜드'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해당 트레일러를 보고 연상되는 키워드- #10대 #댄스 #오디션 #무대 - 들을 고려해 봤을 때, 라라 랜드보다는 2019년의 청춘 댄스 파트너'에 보다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라라 랜드는 형식이 뮤지컬일 뿐 작품의 초점 자체는 주인공들의 예능적인 부분보다는 꿈 많은 두 청춘의 만남과 헤어짐에 초점을 더 맞추고 있지 않던가.)


 문득 저 예고편을 보고  영화가 미친 듯이 다시 보고 싶어 졌는데, VHS 테이프는 세월의 농간으로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비록 아직 가지고 있었다 해도 VHS 단말기가 없으니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영화를 VOD로 어렵게 구해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 생각보다 오래된 영화였다. 무려 1985년 영화더라. 그리고 놀랍게도 주연이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라 제시파커였다.


10대의 청순한 여고생은 30대의 재기발랄한 히피펌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정숙함을 강요하는 가톨릭 학교와 가족에게 억압받으며,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던 <청춘 댄스 파트너> 속 제니를 연기했던 그녀가 20년쯤 뒤에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자유로운 영혼 캐리 브래드쇼를 연기했다니? 20대 초에 <섹스 앤 더 시티>를 봤을 때, 그녀가 <청춘 댄스 파트너>의 제니인 줄 진작 알았었더라면 감회가 더 남달랐을 뻔했다.


 비록 <청춘 댄스 파트너>를 먼저 보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사라 제시카 파커'라는 배우를 뚜렷하게 인식했던 것이 머리가 커서 본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다 보니, 영화를 다시 보는 동안 뭔가 신기하더라. 처음에는 영화 내용에 몰입하기보다는, 비록 동일인물은 아니지만 '캐리가 예전에 10대 때 이랬었을까', '와 캐리 어릴 때 춤 진짜 잘 췄네' 하는 마음으로 자꾸 보게 되더라.. 이래서 미국은 드라마 시리즈로 특정 캐릭터 이미지가 굳어진 경우 연기 변신이 어렵다고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사라 제시카 파커의 풋풋하고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영화 자체는 지금 봐도 상당히 재미있다. 워낙 어릴 때 자주 반복해서 봤던 영화였던 탓에 플롯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댄스 장면의 역동성이 지금 보기에도 상당히 놀랍다. 오히려 요즘 댄스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보다 더 역동적인 것 같다.


85년 영화 특유의 촌스러운 연출도 묘하게 '힙'해보인다!


 TV에서 젊은 남성/여성 그룹으로 구성된 정규 댄서들을 채용하여 댄스와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걸 보고 영화 <헤어스프레이>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아마 요즘 시대로 치면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엠넷 음악 방송 같은 느낌일 것이다.




 당시에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분명히 있긴 했겠지만, 이렇게 '댄서'들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은 신기하게 다가왔다. 또한, 당시 텔레비전의 크기나 화질의 한계로 방송 출연진들이 좀 더 잘 보이기 위하여 화려한 스팽글이 달린 의상이나 네온 컬러의 강렬한 레오타드를 입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Alex Brown의 <Come On Shout>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는 댄서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댄서들은 단독이 아니라 주로 남녀 페어로 묶여서 출연하며, 당시의 방송 댄스는 최근의 안무나 현대무용 느낌이라기보다는 기계체조, 발레, 에어로빅, 스포츠 댄스 등을 섞은 종합 스포츠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상당히 역동적인 편인데, 아마 당시에 유행하던 댄스 넘버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 같다. 비트가 강해 댄서들의 격한 움직임과도 잘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듣기만 해도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듯한 음악들이다. 80년대 노래라 촌스러울 것 같지만 영상과 배우들의 에너지와 무척 잘 어울린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1980년대 후반에 푹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특히 막판 댄스 경연대회의 배경곡인 Q-Feel의 <Dancing in Heaven>Rainy의 <Technique>의 선율, 가사가 주인공들의 댄스와 딱딱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은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전율의 경지다.

주인공들의 딱딱 맞는 동작을 보라!


주인공의 라이벌도 매력적. 보는 내내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감탄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확실히 1980년대 사람들이 운동량이 더 많아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보다 기본 체력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남녀 주인공 커플의 꽁냥거림도 댄스로 연출.


 <청춘 댄스 파트너>는 당시 젊은이들의 신체를 통해 온몸으로 표현되던 활기와 반짝이던 청춘의 느낌이 시간을 넘어서 묘한 전율을 주는 영화다. 몸이 쫙쫙 찢어지는 그들의 유연한 신체에 경의를 표하며, 그저 영상을 보고 사운드 트랙을 듣는 것만으로도 운동 뽐뿌 +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치는 영화다. 30대의 나는 영화 속 그들처럼 몸을 쫙 찢고 돌리고 점프 및 백 텀블링하는 게 절대 불가하겠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는 한 번쯤 저렇게 격하게 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최근 페스티벌 하나 다녀온 뒤 심한 감기 몸살로 일주일째 끙끙 앓으며 '다시는 이렇게 놀러 다니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래도 올해 들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연말쯤에는 다리를 일자로 곧게 찢는 것을 목표로 해보려 한다. 죽기 전까지 마음이 늙지 않는다면 나 또한 계속 '청춘'의 댄스를 출 수 있으리라 믿으며!



+


1. 왓챠에서 이 영화를 '<스텝 업>의 어머니'라고 칭한 리뷰를 보았다. 다시 보니 과연 그럴듯하다.


2. 곧 미드 90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한다. VHS 비디오로 녹화한 듯한 노이즈가 들어간 필터 앱과 아날로그 느낌이 나는 카메라 앱, 90년대 스타일의 빈티지 의류가 유행하는 지금. 90년대 레트로를 향한 향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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