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김 Mar 11. 2024

2월 기록

<월기 프로젝트>

 이것저것 일이 많아 처리하다 보니 2월 기록 업데이트가 조금 늦었다. 3월이 시작된지 무려 10일이 지난 뒤에야 기록을 남긴다. 그냥 부담없이 가볍게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시작한 월기 프로젝트인데 뭔가 한 달의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계속 미루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평가받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고, 여기엔 완벽이라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어제의 나보다 발전한 나 

 어설픈 완벽주의와 자기파괴적인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세운 기준이다. 매주 세운 목표들을 매일 작게 조각내어 실천해나가는 것. 원하는 모습의 미래로 무리없이 걸어 올라갈 수 있도록 일상의 계단을 튼튼하게 짓는 것. 처음에는 큰 목표를 무리하게 세웠다가 어김없이 스스로 무너지는 걸 보면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는데,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자는 다짐으로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하자 좀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른쪽 길다란 것은 뱀모양 연이다. 바람에 날리면 뱀이 또아리를 트는 것처럼 빙글빙글 돈다.


- 2월의 템펠호프는 조금씩 푸릇푸릇해졌고,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연들을 보면서 신기했고, 내가 연을 날려본 것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생각해보니 거의 초등학교 때 이후론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작은 연이라도 하나 사서 날려볼까 싶었던 날. 


- 설 연휴에는 스피킹클럽 친구들과 딤섬을 먹으러 갔다. 원래 만두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다시 만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이 모임 친구인 C의 모모(네팔식 만두) 덕분이다. C의 모모는 특히 직접 만든 소스가 일품인데, 맛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정말 맛있다. 그런데 이 날은 C없이 D와 M과 만나 중심가에 유명한 딤섬집을 가게 되었고,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앉을 수 없었을 북적거리는 실내에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왜 이 곳이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양고기와 무화과가 들어간 핑크 만두, 살짝 매콤한 새우 오렌지 만두, 소고기의 육즙이 일품인 블랙 만두 등 이름만으로도 궁금한 메뉴들이 가득했다. 특히 핑크 만두가 완전 내 취향저격. 조만간 또 먹으러 가야지.  


포츠다머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 내부 (Stabi am potsdamer straße)


- 포츠다머 플랏츠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보통 슈타비라고 부름 - Stabi am potsdamer straße) 처음으로 방문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갔었던 운터 덴 린덴에 있는 슈타비가 더 좋았지만 넓은 독서실의 규모와 웅장함으로는 이 곳의 분위기도 만만치않더라. 여기에서 이 곳에 대한 기고글을 썼더랬다. 공사 때문에 내년쯤부터 닫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올 수 있을 때 또 와야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맛있음.


오랜만에 한국에서 지인들이 와서 함께 모였다. 한국생활 6년의 결실로 나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독일인 친구 J의 집에 초대받아 밤새 와인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들어 술을 마실 일이 거의 없었기도 하거니와 나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 날은 너무 맛있는 와인이 많아서 마음놓고 즐겼더랬다. 

독일에서 살면서 커리부어스트 외에 소시지를 따로 사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날 다양한 종류와 맛의 소시지를 먹어보고 한번 정육점에서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뮌헨에서 온 것으로 유명한 하얀 소시지(Weißwurst)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장볼 때 한번 사봤는데, 할머니 말로는 진짜 하얀 소시지는 돼지와 송아지가 섞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산 것은 거의 돼지고기로만 된 것이어서 다음에는 제대로 된 것으로 찾아봐야겠다. 


영화 The Voices Of The Silenced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박수남 감독과 딸 박마의 감독(왼) /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 2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베를리날레에서 이번에는 영화를 2편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재일교포인 박수남, 박마의 감독의 <The Voices of Silenced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이탈리아 감독 피에로 메시나 Piero Messina의 <Another End>. 하나는 아침에, 하나는 오후에 각각 다른날 봤었는데 둘다 임펙트가 강한 영화였다. 특히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경우 전쟁 이후 일본에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 원자폭탄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필름을 복원해 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아침에 보기에는 꽤 강렬한 내용이었고 보는 내내 너무 슬펐고 분했다. 한국의 역사를 일본어로 보고 듣는 것 또한 묘한 기분이었다. 같이 봤던 독일인 친구 G도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G와는 다른 날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는 근처 카페에서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 소녀상에 얽힌 이야기를 영화로 더 자세히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Another End>는 이번에 선정된 경쟁작들 중 하나였는데 SF적인 장르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영화 제목이 곧 내용인데,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빌려 이미 죽은 사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한국에 개봉할 것 같지는 않지만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다.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화면에 not here이라고 떠서 영화관을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순간 놀랬는데, 곧이어 A와 nd가 앞뒤로 더해져 안심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그렇게 만든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 2월의 하이라이트. 위에서도 등장했던 한국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 3년 만에 백뻘게 글모임이 열렸다. 글 주제는 "게임"이었고, 무려 한달 전에 정해졌지만 간만에 글을 쓰려니 (언제나처럼) 뭔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좀처럼 소재를 못 찾다가 우연히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글을 굉장히 열심히 썼더랬다. 무려 리서치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물론 이 글도 조만간 게시할 예정이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주제를 정한 사람이 제일 먼저 읽을 사람을 선택했고, 순서대로 돌아가며 글을 읽었다. 숨을 죽이고 듣다가 끄덕이며 공감하고, 숙연해졌다가도 빵 터지기도 하고. 모두가 그리워했던 분위기였다는 걸 글을 들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언제 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같이 다시 모일 순간을 고대한다. 


+ 파업이 계속 되고 있다. 이름하여 미니 파업이라고는 하는데, 이렇게 찔끔찔끔 자주 하니까 이게 뭔가 싶다.

+ 주변에 마음을 다시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새삼 감동 중인 요즘. 지치지 않게 차근차근 해나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