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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김 Feb 04. 2024

1월 기록

<월기 프로젝트>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않은지 거의 2년째. 그동안 뭐라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작년을 그대로 흘려보냈던 것이 아쉬워서 올해에는 최소 한달에 한번, 월말이나 월초에 월기라도 쓰려고 한다. 짧아도 상관없고, 재미없이 줄줄이 사건의 나열이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쓰자. 나의 한해를 이렇게라도 기록해놓자 싶어서. 


1월을 마무리하고 2월을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였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비스, FutureMe (https://www.futureme.org/letters/new)


어떤 경로로 이 서비스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포폴 정리하면서 편지 관련된 이미지를 찾다가 발견한 것 같다. 예전에도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1년 뒤에 받은 적이 있었는데 뭔가 내가 이런 말을 썼던가? 하고 과거의 내가 낯설면서도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있다. 누구에게든 편지를 받는 것은 언제든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것이 비록 바로 몇 주 전의 나라도 말이다. 


재작년 말, 그리고 작년 초. 나 자신의 마음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타이밍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어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묻혀있던 유물이 발굴된 느낌이었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난 6년의 시간 동안의 해외생활 중 깨달은 것 중 가장 값진 것이었고, 그 이후로 나는 더이상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그만 두고 나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가 되어주자고 결심했다. 이게 막상 말이나 글로 꺼내면 뭔가 상투적인 느낌이 들지만 정말 마음깊이 깨달았을 당시에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이 전율로 떨렸더랬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나 자신의 안부를 묻곤 한다. 요즘 괜찮은지, 잘 지내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마치 친구에게 연락하듯 말이다. 


작년부터 지속해오던 아침저녁 20분 요가 뒤에 새로운 루틴이 추가되었다. 바로 차를 마시는 것.

이전부터 계속 관심은 있었는데 뭔가 제대로 배워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가까운 친구를 통해 좀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차 마시기를 시작한지는 좀 되었는데 요가를 끝내고 나서 숨돌리고 하루를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것 같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루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직접 고른 Tea time playlist를 배경으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신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시간을 따로 내서 읽으려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기 힘들었었는데, 아침 루틴에 넣고나니 쉬워졌다. 역시 책은 자투리 시간에 읽는 맛이지.


차 마시는 풍경. 왼쪽의 <아인말 슈톨렌, 비테>는 친구가 최근 직접 출판한 책이다. 별 다섯개 강력 추천!


본래 야행성인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시는 경험을 하고 나니 아침에 좀 일어나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물론 아침형인간이 될 길은 멀었고 늦잠 잘 때도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려고 노력하다보니 예전과는 확실히 기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8시간 취침은 유지 중. 안 그러면 피곤하니까. 


1월에는 연초부터 독독독 독일어 단어 스터디에 참가해서 나름 올출로 불태웠다. 북클럽도 참여 중인데 작년의 나와 비교하면 꽤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나의 독일어는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 과거에 '왜 이렇게 공부했는데 아직도 이렇게밖에 못하나..'라는 태도였던 나와도 확연히 다르다) 영어 습득 루틴은 아직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히 학습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은 후로부터 왠지 더 발전이 빠른 느낌이다. 마음이 가벼워져서 그런가? 그저 기분 탓인가? 뭐 상관없다. 


손이 많이 굳은 것 같아 다시 훈련시키기 위해서 스케치 연습을 시작했다. 뭘 그리면 좋을지 고민할 시간을 없애려고 처음엔 핀터레스트에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보고 가볍게 그리다가 이제는 좀 더 구조적인 스케치를 하고 싶어져서 Chair Anatomy라는 책을 구입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자를 그려보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구조를 파악하는 재미까지 일석이조다. 나도 언젠가는 나의 의자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쉴 수 있는. 그런 의자. 

손풀기로 또 하나 다시 시작한 것은... 피아노이다. 자주 가던 동네 도서관에 우연히 피아노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예약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서 오랜만에 치는데... 정말 너무 오랫만에 쳐서 그런지 손이 마음같지가 않다. 하지만 다시 클래식을 듣다보니 피아노 연주회에 가서 직접 듣고 싶어졌다. 뭐든 하고싶은 열정이 생긴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아무생각없이 그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 자체가 나에게는 명상이 되는 느낌이다.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재작년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 근처로 이사온 것은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산책하는 것이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 되었고, 심지어 자전거도 샀으니까. 눈이 내린 템펠호프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거대한 평지가 온통 눈으로 덮힌 것을 본 것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드넓은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점이 된 느낌. 아마 드론으로 나를 찍었으면 그렇게 보였을 거다. 봄이 되고 날씨 풀리면 열심히 자전거타러 나가야지.


눈으로 덮힌 템펠호프 공원.

 

+ 2월부터는 그래스호퍼를 시도해볼 계획이다. 그 전에도 몇번 시도했지만 프로그램 공부를 하려면 확실히 좋은 튜토리얼을 찾아야하는데 그게 늘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도해봐야지.

+ 그저께 교수님과 또 한 번 통화를 했다. 학교다닐 때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도와주려고 해서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부디 보답할 수 있게 되길! 

+ 날씨가 풀릴 것 같다가도 또 한파가 온다고. 잦은 파업도, 햇빛없이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도 이젠 뭔가 익숙하다. 그래도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상 1월 월기 끝! 2월에도 부담없이 쓰려면 여기서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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