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기 프로젝트>
바쁘게 흘러간 한 달이었다.
기나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비가 오길 반복했다.
산책길에 보니 곳곳에 봉긋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꽃봉오리들이 봄이 왔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오직 한 가지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던 3월. 그런데 조금 무리했던 탓일까, 아니면 환절씨 날씨 때문인지 오랜만에 감기에 걸린 채로 일주일 정도를 보냈다. 감기가 걸리면 꼭 코막힘부터 시작되서 편도선이 뭔가 미지근하게 아파오는데 그동안은 가벼운 코감기증세로 약먹고 자면 하루 뒤엔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후각이 살아있는 걸 보니 코로나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일주일간 감기약과 몸보신 음식을 열심히 먹고 다행히 회복했다.
게다가 컴퓨터 작업을 갑자기 좀 많이 했더니 눈꺼풀염이 생겨서 독일에서 처음으로 안과에 갔다. 밤에 자려고 하는데 왼쪽 눈이 뭔가 꺼끌거리면서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바로 다음날 예약이 가능한 괜찮은 병원이 집 근처에 있어서 다녀왔다. 아침을 먹고 계시던 룸메이트 할부지 할무니가 어디 가냐고 물어서 안과에 간다고 했더니 놀라셨다. 생전 아픈 적이 없던 내가 병원에 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예약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약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의사 역시 왼쪽 눈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으니 항생제를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진료는 늘 그렇듯 5분도 안되어 끝났다.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한동안 눈마사지기를 안썼는데 다시 활발히 사용 중이다.
4월 역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겠지만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배우고 성장한 달이었다.
3월에는 약속이 거의 없었다. 2월에 나갈 일이 많았던지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계획한 것도 있었다.
작년 생일에 같이 노래방을 갔던 친구들 그룹과 3월 초에 또 노래방을 다녀왔다 ㅎㅎ 학교 친구 Y의 소개로 알게 된 친구들로 모두 어렸을 때부터 베를린에서 나고자란 베를리너들이다. 심지어 홍콩계 친구 H는 Y와 유치원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독일인들이 친구라고 부르는 관계는 최소 유치원 동창은 되야한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아무튼 작년에 어쩌다 단톡방에 초대받아 노래방 멤버에 끼게되었는데 Wedding에 있는 한국 가라오케라서 금영노래방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친구들은 이전에도 여러번 와봤었지만 한국인과 와본 것은 처음이었고, 내가 리모컨으로 간주점프와 음정 키 변경 기능을 보여주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에서도 노래방 안간지가 꽤 되어서 아는 노래가 있을까 불안해하면서 갔는데 다행히 세대가 비슷해서인지 생각보다 같이 아는 노래들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독일어 노래는 없었지만 팝송을 같이 부를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룸 예약이 꽉 차있는 바람에 오픈된 스테이지 공간에서 노래를 불러야했는데 하필 그날 누가봐도 성악전공이신 것 같은 한국 분들이 너무 솜씨를 뽐내주고 계셔서 같이 간 친구들이 기가 죽었는지 ㅋㅋㅋ 노래를 한 곡도 안 부른 친구도 있었다. 나도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은, 심지어 모르는 외국인과 한국 노래를 불러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역시 I는 아닌가봐...) 다같이 6월에는 Warschauer에 있는 론슨바를 공략해보기로 했다.
최근에는 템펠호프 공원 산책보다 빅토리아 공원을 더 많이 갔다. 평지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보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서서히 길어진 해가 가장 마지막까지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베를린 시내가 저멀리까지 보여서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드는 곳이다. 얼마 전에는 가방도 없이 책 한권만 들고 와 돌담 위에 올라앉아 읽는 사람도 보았다. 집이 엄청 가까운가보다, 하며 나도 다음에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좀 더 풀리면 시도해봐야지.
3일은 같이 사는 룸메이트 할부지의 생신이었다. 평소의 몇 배는 되는 전화와 카드를 받고, 많은 손님들이 선물과 함께 방문해 티타임을 하고 갔다. 나는 레터오프너- 편지봉투칼을 선물로 드렸는데, 원래 가지고 계시는 편지칼이 있지만 매번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 헤메시기에 테이블에 세워두고 금방 찾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작년에는 스도쿠북을 드렸었는데 이번에도 다른 분들이 선물한 것 같았다. 위 사진은 선물 챙겨줘서 고맙다며 할무니 할부지가 초대한 티타임. 작년 말부터 할부지 건강이 심상치않아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많이 괜찮아지셨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너무 고생이 많아서 우울증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됐다. 자주 우시기도 했고... 두분 다 나에게 나이들어서 아프지 않으려면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한다고 덧붙이셨다.
처음으로 사먹어본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 - 백소세지. 사실 나는 소세지를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2월에 J의 소세지 요리를 먹어본 이후로 여기 있을 때 다양한 종류를 즐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룸메이트들이 자주 즐겨먹던 백소세지를 사보았다. 나는 그냥 마트에서 괜찮아보이는 것으로 샀는데 할무니가 말씀하시길 돼지고기와 송아지고기(Kalbfleisch)가 섞인 것이 좋은 거라고 했다. 이것은 주로 물에 뎁혀서 껍질을 벗겨먹는 것으로 뮌헨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4월에는 곧 화이트슈파겔 (Weißer Spargel)- 흰 아스파라거스 철이니 부지런히 해먹어봐야겠다.
28일은 Earth Hour 날이었다. 벌써 9년째 챙겨오고 있는 나름 스스로 중요한 연례행사인데 당일에 같이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H와 갤러리 투어를 하다가 시간이 늦어 H의 집에서 1박을 하느라 못해서 다음날인 29일에 했다. 늦게라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며 스스로 합리화...
+ 너무 사람을 안 만나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타인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겠더라.
+ Comfort zone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