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준비하며...
2020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 개봉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마치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이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제목을 뭘로 할까, 하고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글쓰기의 제목이 바로 '개봉 다이어리'였다.
평생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져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 전까지 극장에 영화를 개봉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개봉'이라는 말은 나에겐 거대한 장벽이자, 반드시 넘고야말겠다는 일종의 목표였다. 그렇게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만들어졌다. 결국 극장 개봉에 성공까지 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이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또 한 편의 '개봉 다이어리'를 시작하려고 한다. 바로 영화 '건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김일성의 아이들'이 그전까지 제대로 봉인이 열리지 않았던 북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건국전쟁'은 대한민국 건국에 얽힌 감춰진 이야기들이다. 아니 솔직히 누군가에 의해서 거짓이 참이 되어 버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승만이 있다.
독재자, 친일파, 미국의 앞잡이, 심지어 살인마라는 소리까지 등장했다. 과연 정말 그랬을까? 2021년 아주 우연히 북한에서 이승만을 평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놀랍게도 지난 70여 년 동안 이승만에 가해졌던 온갖 비난과 저주 섞인 표현들은 거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시작된 것들이었다. 그건 나에게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사실 이전까지 이승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언론과 몇몇 지식인들의 만든 천박한 수준에 불과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녔던 나와 같은 386세대들에게 이승만이란 존재는 모든 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나 남한의 좌파 역사학자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이승만 죽이기'는 시작됐다.
그때부터 3년 동안 이승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이나 글들을 모조리 뒤졌다. 돌이켜 보면 그건 나만의 이승만 연구였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21년 처음 이승만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가족부터 지인까지 모두 말렸다. 그걸 만든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편한 길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그랬다.
어느 나라나 순탄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 하지만 거짓이 진실이 되고, 사실이 참을 이긴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에는 너무나 많은 거짓말들이 존재했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런 절박함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틴 게 아니었을까.
'개봉 다이어리'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건 세상은 말하는 대로 이뤄지고, 간절히 원하는 것은 쓰면 이뤄진다는 개인적인 믿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극장에 영화를 개봉한다는 것, 사실 그건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결코 쉽지도 않은 일이다. 무슨 거창한 영화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말 그대로 홀로 맨 땅에 해딩하듯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 극장에 개봉을 해야 한다. 그러니 뭔가 스스로를 단단하게 고정시켜 줄 튼튼한 말뚝 같은 것은 하나쯤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뭐든 '쓰면 이뤄진다'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거의 매일매일 '개봉'의 염원을 담아 글을 썼다. 다시 글을 시작하면서 3년 전에 썼던 글을 찾아 봤다. 2020년 나의 첫 '개봉 다이어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20년 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거의 정확히 내가 만나지 못했던 그 20년만큼 그는 영화판을 누비며 살았다. 숫자가 때로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날이 꼭 그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북한 아이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돈이 되겠어?’
마시던 커피가 목구멍에라도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내가 선배인데… 어디 쥐구멍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이 50을 넘겨서 아직도 철없다는 소리와
결국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나는 한겨울 매서운 바람 몰아치는 동유럽의 벌판 위에 맨몸으로 설 수 있었는지, 무슨 깡으로 역사의 강을 건넜고, 역사의 숲을 지나 꽁꽁 숨어 있는 70년 전 북한 아이들의 흔적들을 찾으려 했을까?’
돌이켜 보면 좀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역시도 이젠 과거일 뿐이니. 그래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이켜 보며, '그래, 나는 이렇게 살 거다. 어쩔래?!' 하며 삿대질이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그렇게 만든 영화가 '김일성의 아이들'이었다...
(2020년 1월 8일, '개봉 다이어리' 중에서)
그래, 우리는 누구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순탄하지 않은 역사를 거쳤다. 수없이 많은 외침을 당하고도 동아시아 대륙 한 귀퉁이에서 고유한 민족과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고 수 천 년을 버틴 것만 봐도 그렇다. 식민지도 거쳤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전쟁도 있었다. 여전히 머리 위에 14억 중국 공산주의와 세상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북한 체제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건 속에 살면서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룩했다. 요즘엔 한류를 통해 문화적으로도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가게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3대 정도는 지나야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 또한 그런 것 같다. 지독히 가난했던 아버지 세대와 나라조차 남에게 빼앗겼던 할아버지 세대가 있었다. 그런 순탄하지 않은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그들은 포기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건국'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건국전쟁'은 평생 조국과 민족만을 위해 애를 쓰며 살다가 쓸쓸하게 타향해서 숨을 거둔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랜 세월 동안 온갖 비난과 거짓으로 분칠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다. 3년 동안 단 하나의 바람이 있었다면, 이젠 부디 나라밖에 몰랐던 그 불쌍한 노인을 위해서 우리 모두의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기도 하다.
2020년 처음 썼던 '개봉 다이어리' 마지막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누구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무대는 늘 감동이라는 엔딩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영화도 그렇게 잘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목숨걸고 한다'..."
그래, 3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글이다. 영화 '건국전쟁', 그리고 '개봉 다이어리'... 이번에도 목숨걸고 한다.
글.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제작 후원: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