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부터
영화 '건국전쟁' 개봉 다이어리 4편
'한 사람'
늘 살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또 무엇이 그른 것인지 판별하려고 노력했다. 대학 다닐 때 열심히 데모를 하던 때와 60대 직전의 나이에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것은 그래서 나에겐 똑같은 일이다. 적어도 젊은 시절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성찰과 반성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 중이라는 점에서 그래도 조금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과연 사회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운동권적인 사고로 표현한다면 광야의 불씨가 번지면서 온 광야를 불태울 수 있다. 그래서 그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조직은 노력해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이나 모든 것은 조직 사업이고 그래서 대중을 의식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광야의 불씨는 한 가지 모순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처음 시작하는 그 작은 불씨는 말 그대로 불쏘시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조직을 위해선 개인도 희생되어야 하고, 거대한 광야가 타오르는 순간 불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공산주의와 자유에 기초한 개인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경멸한다.
성경에서도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 대목이 많은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소돔과 고모라'일 것이다. 창세기 시절 등장하는 도시들이다. 성경에 기록된 것에는 그 도시들을 하나님이 심판하려 하자 아브라함은 그래도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살고 있기에 구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처음에는 50명으로 시작한 의인 찾기는 다시 30명으로 내려가고, 결국에는 10명으로 줄어든다.
의인 찾기에 실패한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숫자를 줄여나가도 하나님께서는 그걸 받아들인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 찾기에 실패하고 다시 5명, 3명, 마지막 한 명으로 숫자를 줄여달라고 요청했어도 하나님은 그걸 들어주셨을 것이라 믿는다.
이 성경 우화는 우리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자비한 신의 분노와 무한한 신의 자애로움은 공존한다는 생각, 그리고 결국 소돔과 고모라에는 그 의인 한 명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멸망하는 공동체의 운명이라는 것이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가치가 지니는 소중함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거꾸로 시작해 보면 더욱 그 '한 사람'의 가치가 뚜렷하게 부각된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한 사람의 의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고 스스로 죄를 짓고 이기적인 욕망에 빠질 때가 많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 '건국전쟁'을 3년 동안 만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바로 이 '한 사람'의 소중한 가치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깨어있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지닐 수 있다면, 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사고는 더욱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그가 바로 영화 '건국전쟁'의 주인공이었던 이승만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란 위기, 절체적 운명에 놓인 나라를 마지막 순간 구해낸 것이 그가 아니었을까.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빗댄다면, 최후의 순간 아브라함이 찾았던 바로 그 의인 '한 사람'이 이승만이 아니었을까.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안락과 번영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과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 나라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소련, 북한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 언제라도 공산화시킬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땅에 불과했다. 그걸 이승만이라는 한 의인이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지난 70여 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북한과 친북 좌파 세력들이 함께 이승만 죽이기에 나섰던 역사였다. 한반도에서의 정통성을 두고 다툰 분쟁과 대결에서 솔직히 196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은 오늘날의 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군사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력에서도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에 한참을 밀렸다. 게다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공산화 직전까지 갔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걸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 그 역사적 근거를 우리는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한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영화 '건국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한국말을 못 하는 그를 위해서 열심히 영어로 '건국전쟁'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설명했다. 홍보 자료로 만든 이미지를 보고 그가 약간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 '건국전쟁' 밑에 있는 영어 부제목 'The Birth of Korea'는 정말 잘 만든 제목입니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한눈에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그러면서 최근 미국 정가에 돌고 있는 사진 한 장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바로 야간에 한반도 위를 날던 위성사진이 찍은 사진이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한반도 남쪽과 어둠의 세계로 변해버린 북한 지역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중국 공산당 때문에 미국도 정치인들이 고민이 많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공산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입니다. 이럴 때마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휴대폰에서 꺼내서 보여주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한반도의 남과 북을 동시에 촬영한 위성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나라와 공산주의 이념에 물든 나라 중 어느 체제가 위대한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눈에 'The Birth of Korea', 즉 '대한민국의 탄생'이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영화 '건국전쟁'을 만들면서 늘 마음속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좌절, 아픔이 존재했었다. 그걸 잘 보듬어서 영화 속에 어떻게든 녹여내고 싶었다. 그 위대한 여정을 이승만이라는 한 사람이 길을 밝히고 이끌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 경의적인 사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제 영화는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네 차례나 비공개 시사회를 통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점검했다. 네 번 모두 거의 동일한 반응이었다. 한 고등학생은 영화 '건국전쟁'을 본 뒤 '학교에서 전혀 가르쳐 주지 않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이 영화가 전교조가 지배한 일선 학교에서 올바른 대한민국 정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는 좋은 교육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독은 말이 아니라 결국 영화로 관객들과 만나야 한다. 나에게 이승만이라는 한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나는 그를 통해서 무엇을 세상에 말하려고 했을까. 만약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한 노인에 대한 미안함...'
그가 이룩한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아마 나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미 시중에는 한두 편의 그런 작품들도 나온 상태다. 나에게 영화 '건국전쟁'을 한마디로 정의 내려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미안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떻게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거대한 싸움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한 사람을 이토록 처참하게 상처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의 순수했던 애국심을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난도질할 수 있었을까, 그런 잔인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그를 원래의 위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바로 마음속 깊은 우러나오는 미안함이었다.
조금씩 생각은 다르겠지만, 영화 '건국전쟁'의 네 차례 비공개 시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분명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마음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과 번영에 우리들 스스로 지불해야 할 각자의 몫이 아닐까.
영화 '건국전쟁'은 2024년 봄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통해 여러분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극장 개봉부터 광고 홍보까지 많은 비용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직은 그런 비용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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