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배달합니다.
다람살라의 록빠어린이도서관을 떠나기 전 했던 마지막 사업은 책배달 서비스였다. 정식 프로젝트 명칭은 'Books on Wheels'였는데, 이 사업에 영감을 주었던 사람이 콜롬비아에서 당나귀에 책을 싣고 산악지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주는 당나귀 도서관 아저씨였다.
지금도 Biblioburro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열어 소식을 전하는 이 아저씨가 당나귀 두 마리에 책을 싣고 산골 마을에 가서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거나 직접 읽어주는 영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발견한 이동 배달 도서관의 사례를 찾다보니 여행으로 방문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도 비슷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랑프라방은 메콩강을 끼고 있는데, 메콩강의 존재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도서관에 올 수 없다보니 배에 책을 싣고 다니면서 강변에 배를 정착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거나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람살라와 인근의 티베트인 마을들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왕래가 쉽지 않은 것도, 책을 충분히 소장한 도서관이 없는 것도 비슷한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북버스를 운영해 보자!! 고 빼마와 의기투합했다. 왜 당나귀와 보트를 보고 버스로 아이디어가 바뀌었을까? 다람살라에도 당나귀가 많았지만, 나는 다람살라 생활 첫 해에 당나귀가 밀쳐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경험때문에 당나귀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사장에나 동원되는 당나귀를 몰고 그 넓은 인도에서 티베트 마을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기도 하고~ 그냥 꿈은 꿈으로~~ ^^
하지만, 록빠의 재정 상황상 북버스는 정말 언젠가 이루어보고 싶지만 실제로는 너무 먼 꿈이었다. 버스를 살 돈을 마련하거나, 버스를 운전할 기사를 고용하는 일도 당시에는 요원했기 때문이다.(현재도 사정이 그리 나은 것은 아닐텐데... ) 그래서 일단 시작한 것이 택시를 타고 책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티베트 난민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책을 배달하기에는 인원과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람살라 인근에 흩어져 있는 티베트 학교(TCV: Tibetan Children's Village)의 도서관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새 책을 한달 간격으로 임대해 주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이미 도서관이 있는데 왜 우리 책이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방문해본 TCV의 도서관은 외국에서 거의 폐기처분 되다시피한 상태로 기부를 받은 낡은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책의 상태도 문제였지만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아닌 것들이 더 많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록빠 도서관의 새 책들을 빌려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티베트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책이 없다는 점 때문에 동화책 출판 프로젝트도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티베트 학교의 담당 선생님을 만나 사업을 제안하고, 임대책을 보관할 별도의 록빠 책꽂이를 제작했다.(그래봤자 책 2-30권 정도가 꽂히는 작은 책꽂이다. 한국의 도서관에서 봤던 책 서가를 흉내내고 싶었는데, 이 책꽂이의 도면을 그리고 인도인 목수 아저씨에게 이해시키는 데에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ㅡㅡ) 임대할 책들은 직원들과 함께 미리 비닐을 사서 하나하나 커버를 씌웠다. 그렇게 준비된 새 책을 배달하고, 다음 달이면 책을 회수하고 다시 또 다른 책으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새 책을 가지고 갈 때마다 어떤 책이 새로 왔나 몰려들어 구경을 했고, 재미있는 책은 한 달 더 두고 가라고 조르기도 했다. 가져온 책들은 파손된 부분을 확인해서 다시 커버를 씌우거나 수선하는 일을 해야 했다.
책을 배달할 때마다 자차가 아닌 택시를 이용해야 하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의 상황때문에 하루 종일 걸려도 두, 세 군데 밖에 방문하지 못했지만 새 책을 보고 몰려드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참 행복했다. 록빠 어린이 도서관은 지금 잠정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나는 그 도서관의 초대 관장이자, 어찌보면 마지막 관장이 된 셈이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젠 티베트 학교와 난민 마을에 티베트어 도서도 늘어나고 다른 도서관의 여건도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했던 일들이 작게나마 본보기가 되었을 거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