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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ul 29. 2024

"퍼펙트 데이즈" , 퍼펙트하지는 않더라도 충만한 일상

결국은 그것만이 퍼펙트해지는 유일한 길이기에

1. 단조로워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다른 이에게조차 웃음지게 만들던, 그가 미소짓던 순간들.


그는 편안하게 웃는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가끔 피곤하여 하품을 할지라도 인상을 쓰지는 않는다.)

고단한 업무 중에서도 햇살과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풍경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골라 들으며 아침 출근을 할 때.

순수한 존재들이나 마음들을 마주쳤을 때.(아이들의 순수한 인사나 장난을 마주칠 때, 나태하고 덜떨어져보였던 그의 직장동료가 장애가 있는 아이와도 잘 놀아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자연과 하나되어 자유롭게 춤추며 시간을 보내는 이방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웃들의 정감있는 말과 관심에 대응하며.

그는, 편안하게 웃음짓는다.


2. 그는 그가 "맡은 일"을 조용하고 단단히 일군다.

그는 화장실 청소부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고 꺼려하는 일일지라도, 그의 일로서 그는 열심히, 제대로, 묵묵히 한다. 모든 일의 루틴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한 책임감일까. 다른 이들이 무시할지라도, 그는 그 궂은 일을 짜증 한 번 없이 말간 얼굴로 성실히 해낸다. 분명 일반적으로는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일을 하기보다는 한 만큼 드러나는, 정직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3. 그가 매일 담아내고,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그의 집 공간은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의 부단한 행동들로 인해, 풍요롭다.

그는 식물들을 가꾼다. 매일 아침에는 집안의 식물들에 물을 주는 것으로 아침을 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싹을 피어내는 여린 식물들을 보면 이를 캐고, 다시 심어, 물을 준다.

그는 잠깐의 짧은 쉬는 시간에 마주하게된, 그날그날의 예쁜 자연 풍경 사진을 필름카메라에 담아낸다. 주중에는 찍고, 주말에는 사진을 현상한다. 그리고 보관하고 싶은 사진들은 골라내어 따로 보관한다.

그는 매일 밤 책을 읽는다. 아무리 피곤에 지쳐도 책을 읽으며, 그날의 글을 읽고, 담는다.


4. 꿈속에서는 숨겨둔 불안과 아픔이 나타날지라도.

그의 평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비해, 꿈속은 평안하지만은 않다. 뜻을 알 수 없는 흔들리는 장면들은 매일 밤 그의 꿈에 찾아온다. 그의 아픔이나 상처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매일 밤 그러한 꿈을 뒤로하고, 여지없이 이웃의 빗자루 쓸어내는 소리에 깬다. 그리고 바로 그 날의 아침을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고 보게 된 평론가의 글에서 마음에 남는 구절을 발견했다. 그는 "행복하기로 결심한" 자이다. 일상 속 행복을 발견하고야 마는 따뜻하고 강한 자임에도, 깊은 밤이면 여지없이 그의 내면의 불안과 같은 무엇인가가 그의 밤 속에서 일렁인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어두운 꿈 속에서 방황했더라도,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오고 그는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지만, 행복하기로 결심한 자의 삶은 기어코 생 속에서 행복해진다. 행복해질 수 있다.


5. 그는 "기꺼이" 내어준다.

그는 시간도, 돈도, 공간도 다른 이들과 비교하자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주변인들에게 기꺼이 그것들을 내어준다.

그는 그의 테이프를 훔쳐간 여학생에게 단 한번의 꾸지람을 하지 않고, 한번 더 테이프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황당한 그녀의 요청에 대해서도, 기꺼이 같이 듣는 시간을 내어준다. 음악으로도 위로받았으나, 이렇듯 어른으로서의 권위의식이 없고 다정한 '어른다운' 모습에 위로받은 여학생이 감사의 마음으로 볼뽀뽀를 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테이프를 팔아 돈을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직장 동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되, 그의 청춘에서 오는 절박한 땡깡(?)에, 그의 돈을 내어준다. 본인의 차 주유와 저녁식사를 반납하고도, 그를 위해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는, 무작정 가출해 찾아온 그의 조카에게 그의 공간을 내어준다. 불편하고 신경쓰이더라도 조카가 푹 쉬게 해주고, 자신의 일터에 찾아오는 것도 그렇게 하게 둔다. 그리고 당장 일탈하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말한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다음에 충분히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는 위로였을까. 나에겐 그런 위로로 들렸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마주한 처음 본 그 중년 신사에게도 위로를 내어준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죽게 됐다며 씁쓸해 하는 그에게, 그 모르는 부분을 이제라도 알아보자며 함께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잠시나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준다.


6. 그리고 나의 일상을 보다.

고단하고 단조로운 그의 일상으로 꽉채워진 영화. 다른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지는 않았지만,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고 더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무언가.

내 일상 모든 시간동안 항상 온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지는 않다. 생은 기본적으로 고단하며, 일상은 반복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때로는 현재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하는 어지러운 마음과 회한이 있으며, 업무와 사회적 관계들에 지쳐서는 그저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내고 싶어지기도 하며, 아주 이기적이고 협소한 시야를 갖게될 때도 있다. 그러한 마음은 나보다도, 그리고 영화속 그보다도 객관적으로 더 많이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똑같을 것이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시선으로 더 완벽하다고 보이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웃음지으며, 매일의 풍경 속 아름다움을 찾고 기록해나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퍼펙트 데이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상처가 가끔은 고개를 들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슬픔과 행복이 범벅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한 슬픔과 행복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일상의 감사함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과 생의 허무함에서 오는 막연한 슬픔이 모두 찾아오기도 한 얼굴. 한 가지 표현으로 정리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으로 젖은 그의 얼굴을 보며 먹먹해졌다.

나또한 그처럼 내일부터 또 일상을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시 찾아오지는 않을 그 날을 위해, 조금 더 일상속에서 행복과 아름다움을 찾고, 스스로 만들고 담아내는 데 에너지를 쓸 것이며, 주변 사람에게도 아주 조금씩은 더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진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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