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에 대한 탐구와 부딪힘이 결여되다
하긴 - 이미상
그의 부인이 젊은 시절의 남자에 대하여 "하긴 하는 남자"라고 표현했을 땐 긍정적인 의미가 엿보였다. 이런 저런 이유를 막론하고라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하긴 하는 남자. 그러나 남자가 자신의 딸에 대해서 아빠노릇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하긴 하는데 본질은 놓치고 있는 듯 보인다.
남자는 학창 시절 운동권이었다. 정치적 의미는 별론으로 하고, 기본적으로 운동권으로 활동했던 학생이라 함은, 기존의 잘못된 권력 관계나 사회 제도를 비판하고 옳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행동하던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신은 자신의 자식에게 기존의 사회 통념상 좋다고 하는 직업이나 삶의 방향을 갖도록 강요하는 기득권이 되지 않겠노라고 왁자지껄하게 다짐한다. 무엇이 되든 응원하길 다짐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이 되자, 소위 대학은 보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멀쩡한 어른이 되게끔 할 수 있다는 생각 하에 일반적이지 않은 무리한 방법으로 아이를 외국에 보낸다. 그리고 자신이 동경하고 바라던 모습 - 자기주장이 강하고 색깔이 강한 -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며 그러한 모습이 아닌 자신의 딸을 답답해하고, 그러한 모습을 띄는 친구의 딸을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가 자신의 딸의 대학 진학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아이에 대한 부성애와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내성적이며 지적 수준이 낮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정한 모습을 투영하며 자꾸 아이를 자신의 이상향과 비교하며, (말도 안 되는) 주작으로까지 대학을 입학시키게 하는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면 쓴웃음만 남는다. 그리고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며, 정작 아이에게 꼭 필요할 수 있으나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인 피임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하지 못한다. 그리고 함께 그녀와 대학 입학을 위한 주작 자료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정말 딸을 위한 사랑일까.
물론 아이가 너무나 지적 수준이 낮고 답답한, 그리하여 부모가 그녀의 삶에 개입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미숙한 아이였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생각이나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 적이 있었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나 가진 적이 있었을까. 그녀가 느리게 입을 떼어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을 때에도, 그 시간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본인들의 이야기만 퍼부어대진 않았을까.
결국은 그의 딸은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중요한 변화에 하여 부모와 이야기하지 못하고, 회피하려다가 결국은 모두가 모른 채로 변화를 맞닥뜨린다.(딸은 이런 것까지 판단이 느린 사람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같이 꺼내어 직면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딸은 다만 조금 느리고 소극적인 성향의 사람이었을 수 있다. 기존 교육제도상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수 있으나, 다른 분야에서는 자신이 주관을 갖고 관심을 기울일 분야가 있으나 아직 못 찾았을 수도 있다.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여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하는 대학 진학, 교육 제도에서의 시험에 "하긴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시험과 제도에 에 적응하게끔 부모로서 노력을 "하긴 하는" 사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들에 하긴 하며 적응해나가는 것은 물론 중요할 테다. 그러나 이보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본인에게도 필요한 일이자 자녀에게도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너무나 "하긴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본인을 과도하게 혹사시키고 부모를 희생시키는 일이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