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를 보며 떠오르는 상념들.
공상과학영화 스타트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Space, the final frontier. 마지막 개척지, 혹은 한계/경계의 끝을 뜻하는 말로, 인간의 최종 개척지는 우주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이후, 이제는 더 이상 넓혀갈 곳이 없던 땅덩이에 대한 개척에서 더 나아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우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인간의 욕심과 열망을 뜻하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final frontier’의 의미를 우주에서 ‘가상공간’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우주 개발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던 때가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메타버스, 그 어떤 유니버스보다도 넘치는 가능성의 세계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처음 ‘가상 모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신한 라이프 광고에서였다. 이름 오로지(하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순수 한국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다. 가상으로 만들어,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함에도 ‘하나밖에 없는’이라는 뜻을 붙였다는 것은.), 22살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세계여행과 요가, 패션 등에 관심 많은 여성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받았다. 외형은 키 171cm, 몸무게 52kg으로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과 이미지를 모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로지의 최대 장점은 ‘늙지 않음’, 그리고 ‘사고 치지 않음’에 있다. 가상 모델을 쓰면 일반 연예인 모델을 쓰는 것보다 위험부담도 훨씬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에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가끔 실수가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연예인들의 기사를 보다 보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의문을 던지고 싶은 것은 로지가 인간 연예인을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로지가 얼마만큼 벌고 있으며, 얼마나 뛰어난 기술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로지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것보다는 로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려되었던 요소들, 가상 인간이 가지는 ‘완벽함’이 갖는 ‘불쾌한 골짜기’에 대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로지의 키는 171cm에 52kg이다. 연예인보다도 연예인 같은 몸매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져 인기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론을 연결 지어보면, 과연 그게 진짜 MZ세대가 선호하는 스타일인 건지, 아니면 그런 외형이 ‘완벽하게 예쁜 것’이라고 MZ세대에게 ‘주입’되었기 때문인 건지는 생각 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자주 갖고 놀던 바비 인형이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 마르고 길쭉한 팔다리, 한 줌만 한 허리라인. 많은 여자아이들은 그 인형을 보고 성장했고 그렇게 되기 원했으며, 실제로 그와 유사한 사람들을 ‘바비 인형 같다’면서 찬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바비 인형이 되고 싶었던 것은 그게 진짜 선호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외형에 수없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주입이 된 걸까.
한 가지 더 예로 들면 팬톤의 ‘올해의 컬러’ 같은 것이다. 매년 시즌 별 옷 매장들에는 팬톤이 지정한 ‘올해의 컬러’라고 하면서 해당 컬러가 들어간 제품으로 깔린다. 그리고 유명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이 먼저 입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얼리어답터 및 퍼스트 팔로워들이 입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기타 다른 소비자들에게 까지 퍼져서 마침내 ‘올해의 컬러’의 유행이 완성된다. 물론 가끔 음원사이트에서 시작된 역주행이라는 용어처럼 갑자기 어딘지 모를 곳에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마침내 유행이 되기도 하지만, 대기업에서 만든, 혹은 이미 유명해진 가수가 음원을 내면 이미 그동안의 보장된 신뢰와 믿음으로 자연스레 1위를 하고 퍼져나가는 상황이 유행과 소비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로지의 외형이 정말로 MZ세대가 원하는 스타일이냐, 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수없이 마름을 강요당하는 연예인들, 그 속에서 식이장애, 생리불순까지 얻어가면서 만든 ‘완벽 몸매’를 보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결국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고 그런 몸매가 예쁜 거야 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급부상과 함께 다양한 체형, 다양한 인종, 그리고 젠더 리스한 의상과 디자인까지 획일화된 외형에서 점점 벗어난 모델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흘러가는 속에서, 다시금 ‘완벽한’ 가상 인간의 등장이 내게 마냥 달갑지 만은 않은 이유다.
영원한 22세,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무엇인가요?
잠시 곁길로 샌 이야기를 다시 돌려보자면, 가상 인간 로지의 나이는 심지어 ‘영원한 22세’다. 당연하다. 시스템 상에서 그는 늙지 않을 것이고, 굳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주름을 그려 넣을 필요도 없다. 인간이 그토록 원하던 불로장생, 그것도 ‘어리고 예쁜 나이’에서 멈춰진 여성이라니. 누구나 선망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영원히 늙지 않음, 이라는 사실보다 22살이라는 점에 있다. 현재 가상 인간계(?)에서 가장 인기 많다는 미국의 릴 미켈라도 20살 여성이다. 어리고 예쁜 여성에 대한 선망. 물론 가상 모델에 대한 개발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더 나아가면 다른 외모, 다른 체형, 다른 나이, 다른 성별을 가진 다양한 캐릭터들이 더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범적으로 뭔가를 만드는 경우라면 가장 시장에서 소위 ‘잘 팔리는’ 캐릭터를 우선적으로 제작해야 했을 것이고, 분석과 리서치 후에 나왔을 키워드가 22살이라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암묵적으로 인간이 가장 욕심나는 나이, 혹은 스타성이 가장 절정일 나이, 더 나아가면 ‘그 시기가 여성의 가장 예쁜 시기’라고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너무 확대 해석을 하는 걸까? 과민 반응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이제는 내게는 돌아오지 않을 22세의 나이를 질투하는 것까지 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상 모델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냥 단순한 문제 제의인 것이다. 다섯 명이 있는 철로와, 한 명이 있는 철로의 갈림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 기관사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냐 하는 문제와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지만,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발전도 있는 법이니까.
늙지 않고, 완벽한 외형을 언제나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러한 존재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현실의 연예인들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연예인들도 물론,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노력’이란 것을 통해서 얻었다.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가고, 끝도 없는 다이어트를 하고,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그렇게 노력을 통해 얻은 산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나름의 동기부여도 받는다. 그런 단순히 보이는 외형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배울 점도, 배우지 말아야 할 점들도 얻게 된다.
하지만 태초부터 만들어진 존재에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점이 딱히 무엇이 있을까. 장점은 물론 있다.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식의 마케팅을 위한 것에는 가상 모델만 한 존재가 또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상 모델들은 논란거리를 만들지도, 범죄나 큰 사고를 쳐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망치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부담은 확 줄면서,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낼 수 있다. 의상, 메이크업, 헤어, 카메라 등을 담당하는 전문 인적자원들도 불필요하다. 홍보 효과도 좋은 편이다. 로지의 인스타 팔로워 수는 거의 10만이 되어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를 갈망하고, 빠르게 관심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로지 외에 다른 더 주목받는 가상 모델이 등장하면, 로지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 들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일수록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더 빠르게 소모될 수도 있다. 연예인은 설령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팬들은 존재할 수 있는 반면, 관심이 없어진 가상 모델은, 20여 년 전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굳이 ‘개발’할 이유가 없어진다면 말이다. 그렇게 점점 더 ‘인간’에 가까운 가상 모델들은 만들어지는데, 소모되고 폐기되는 건 인간보다 훨씬 쉽고 빠르고 가차 없이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휴머니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기술의 발전이 높아질수록,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문학은 죽어가는 학문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인문학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은 이런 때에 있다. 기술은 인간의 어디까지 닮아야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논의가 이뤄져야 기술이 더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Final frontier, 인간의 개척지는 이제 우주보다도 더 무한하고 끝없는 세계인 가상공간으로 향해 있으며 우주 보다도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하루에 한 번도 가상 세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어디까지 발전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것과 동시에 끊임없는 고뇌와 문제 제기로 옳은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