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2. 물욕1
소비주의 세상에서 유감
나는 오랜 시간 저장 강박이 있었다. 아마 모계 쪽 유전이 아닐까 싶은데, 이를테면 예쁘고 귀여워서 혹은 나중의 필요를 위해서 당장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챙겨 모으는 행위다. 아직 자취한 시절 내 방을 떠올려본다. 내 공간과 내 물건에 대해 애착이 큰 나의 서랍에는 취향을 반영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온전히 제 쓸모를 찾기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커피숍의 컵 홀더라든지, 다이어리를 꾸미기 위한 스티커들, 귀여운 모양으로 생긴 유리병 따위가 그랬다. 정말 ‘귀여움’ 자체가 쓸모인 물건들. 내 주변인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햄스터’ 혹은 ’다람쥐’라고 별명 붙여주었다. (이래도 저래도 설치류인 것인데 ‘설치(齧齒)’의 뜻이 무엇인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이를 가는 습성’이라고 한다. 사실은 나도 자면서 이를 가는 습관이 있는데, 이마저도 비슷하다니 왠지 동질감이 든다..)
저장 강박은 병이다. 정확히는 마음의 병.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찾아오는 불안증을 물건을 가득 쌓아둠으로써 해소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곁에서 엄마를 관찰하였을 때 내린 결론이다. 필요하지도 않지만 매우 싸서 샀거나, 남이 거저 주어서 얻어 온 물건들. 쓰지도 않는 냄비의 가짓수가 열 개를 넘고, 유통기한이 다 지난 샴푸나 클렌저 따위가 욕실 서랍장에 꽉 차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체기를 느낀다. 이걸 지적하면 또 싸움이 난다.
“아 쓰지도 않는 거, 다 갖다 버리라고!”
엄마가 맞고함을 친다.
“안돼!!!”
집에서 몇 년이고 자리 차지하는 물건의 쓸모에 관하여 얘기하면 엄마는 꼭 말했다.
“나중에 이거 다~ 필요하다.” 또는 “나중에 필요할 때 없으면 어떡하니? 또 사야 하잖아!”
그러니까 결국 지금은 쓰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엄마는 이를 절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라는 이유로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왜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낡고 볼품없는 물건들이 정말로 ‘언젠가 필요한’게 맞을까? 사실은 유지 비용과 정신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결국은 물건이 사람을 종속시키는 게 아닌가.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물건에 대한 고민은 어느 아침에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은 살아있는 이상 계속해서 소비하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가질 방법이 있을까? 그런 물건을, 필요성을 가려내는 방법은? 그런 능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지? 언젠가 ‘버림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미니멀리즘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덜 쓰고 알뜰하게 소비하자는 게 아니라 가치 있고 좋은 소비에 대한 개념, 삶의 태도에까지 나아가 생각해볼 화두를 던져주었다.
진짜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