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1. 무기력2
무엇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돌이켜 보았을 때 모든 지각의 공통에는 ‘잠’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잠에 집착하고, 헤어나지 못하였나? 그리고 지금도 주변에서 손꼽히는 잠만보가 되었을까. 과거로 떠나 보자면 부모님의 기대와 동시에 통제와 억압을 받았던 첫째로서 나는 유달리 잠이 많았다. 나이가 아직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을 때부터 게으름의 상징인 ‘늦잠쟁이’였다. 매일 아침 날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5분만을 외치다 참 억지로 일어났다.
당시 '놀토'라는 단어가 있던 시절이라 보통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했는데, 따라서 원하는 만큼 잘 수 있는 날은 나라에서 지정한 빨간 날 말고는 거의 없었다. 당시 유일한 주말인 일요일에도 내 아침잠은 보장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아플 때도 교회는 뺄 수 없는 거대한 족쇄였다. 어쩌다 한번 빠지기라도 하면 집에까지 전화가 와서 "@@가 오늘 출석을 안 했네요~"라면서 날 괴롭혔다. 집에서 혼나는 건 덤이고. 이외에도 교회 자체에 좋은 기억이 없는 나는 말로는 ‘모태 신앙’이라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지독한 무신론자였다.
어머니의 로망으로 악기를 배웠던 나는 어머니의 등쌀에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켰다. 그 모임은 하필 일요일이었다. 고통스럽게 매일 아침 일어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왜 청소년 예배는 이렇게 이른 시간인가? 성인 예배는 오후인데!) 점심을 먹고 부모님의 예배 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같이 차를 타고 집에 와 준비하고는 곧장 합주하러 가는 고달픈 나의 일요일.
고등학생이 되어 목숨을 건 투쟁으로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 악기도 그만두게 된 후, 여전히 토요일은 학교에 출석해야 하지만 일요일은 오전 10시 넘게 잘 수 있는 유일한 하루였다. 그즈음엔 나도 말 잘 듣는 ‘착한 딸’에서 벗어나 입시생이라는 명목하에 예민해져도 되고, 큰소리칠 수 있는 권력을 달콤하게 맛보던 시기였다. 그래도 주중이며 주말이며 과외를 두 개나 받았고, 일요일엔 시내에 나가 친구도 만나야 해서 온전히 그 하루를 즐길 수 있던 적이 없었다. 새벽을 넘겨 잠든 날이면 아침잠에 허우적대다 일요일 약속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성장기의 내게 불충분했던 수면은 이를 보상받으려는 듯 성인이 된 후로 나의 수면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내가 한 말 중 친구들 사이에서 명언으로 꼽히는 것이 있다.
“일어날 필요가 없으면 나는 영원히 잘 수 있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후 일과 약속 없는 온전한 휴일에는 따끈한 봄날의 고양이처럼 종일 잤다. 정말 자고, 또 잤다. 여름에는 여름잠이란 핑계로, 겨울에는 겨울잠이란 핑계로. 인간도 겨울잠을 자거든!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자. 왜 그렇게 자는 것을 좋아하냐고. 인간이 피로를 풀 수 있는 행위이니까?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음 날을 위해서? 아니, 나에게 이유는 하나뿐이다. 자면서는 꿈을 꿀 수 있으니까. 렘 수면시간에 뇌 속에서 생기는 바로 그 현상. 나는 꿈 안의 다채로움을 사랑한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많은 일들, 이를테면 하늘을 난다든지, 요상한 능력이 생긴다든지, 혹은 실제론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캐릭터들이 나와 지지고 볶으며 나를 즐겁게도 힘들게도 만든다. 인상 깊은 꿈은 아침에 깨어 후다닥 다이어리에 기록하기도 한다. 그 아스라이 사라지는 기억들이 너무 아쉽고 잊어버리기 싫은 탓에. 결국 깊이 있는 잠 보다는 꿈꾸는 잠을 추구한 셈이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또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는데, 그의 주장을 온전히 신뢰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꿈속에서는 나를 억압하는 이 없고 통제 받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의 규정과 통제에서 늘 벗어나고 싶어했던 나는 이 자유로움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런 한편 이런 수면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과한 수면 후에 오는 불규칙한 생활리듬이었다. 오래 자도 낮에는 늘 몽롱하고 피곤했다. 종일 자고 오후에 일어나니 밤잠이 오질 않아 괴로워하며 새벽에 잠들었고 또다시 늦게까지 잤다. 낮에 힘이 없고 밤에 쌩쌩하니 단순히 ‘부엉이 과’나 ‘야생형 인간’이라고 나를 지칭했지만 문제는 이제 건강으로 왔다. 밤을 새면 일어나는 피부 트러블과,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위장병이 생기고, 시력까지 급격히 나빠졌다.
이보다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건 엉망이 된 생활패턴으로 인해 생긴 무력감이었다. 오후 늦게 눈을 뜨면 하루를 망친 것 같고, 무얼 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판단에 포기해버리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그 어떤 계획을 세워도 늦게 일어난 날엔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때맞춰 걸어 둔 알람도 다 소용이 없었다. 단호하게 끄고 자버리는 그때의 나는 정말로 눈뜨기 싫었으니까. 나는 어쩌면 좋지? 이미 잃은 시간들은 많았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시간까지 무기력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잠을 줄이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