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이 다른 사람의 사랑의 언어
취향과 성향은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취향은 영화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등 어떠한 대상에 관한 선호이다.
취향은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확장되고 때로는 변화한다. 또한 상대방을 좋아하다 보면 상대방의 모든 취향에 대해 호기심이 따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맞춰지기도 한다.
나는 짝꿍이 즐겨 보던 <쇼미더머니>를 같이 보다가 이제 가을만 되면 짝꿍보다 더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되었다.
소개팅을 주선할 때 “취향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사실은 취향이 아니라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물론 취향이 같으면 서로에 대한 이해도는 높겠지만, 그것은 연인 관계의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다.
반면 성향은 타고난 기질과 같은 거라서, 한 쪽이 일방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면 극도로 에너지가 소모되고 불균형적인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아도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고 해서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영원히 잘 지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성향을 가졌더라도,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엄청난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다.
외향적 성향의 A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향적 성향의 B는 A의 여행이나 데이트 제안이 다소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며 A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관계 중심적 성향의 C는 자주 소소한 카톡을 하면서 꽁냥거리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이 잘 되지 않는 성향의 D는 C를 좋아하지만 일과 중에 카카오톡 답장을 잘 챙기지 못하고, C는 서운함을 느낀다.
이는 서로 좋아하지만 성향이 달라서, 사랑의 언어가 엇갈리는 경우이다.
즉 성향이 잘 맞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닿을 수 있고, 성향이 다르면 좋아하는 마음이 전달되기까지 훨씬 더 성숙한 이해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본질이라면, 성향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을 좌우한다.
다이어트를 하던 자취생 시절, 탄수화물을 제한하기 위해 식단 조절용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엄마는 전화로 항상 “밥 먹었어?”라고 물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는 것이 엄마만의 사랑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대충 먹은 것들을 읊어주면 왜 그런 것들만 먹었냐는 말이 돌아왔기에, 나는 그 때는 그 말이 사랑의 언어인지 몰랐었다.
만약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먼저 그 사람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