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드디어 우리가 장장 1년동안 기획하고 준비했던 결혼식이 (무사히!) 끝이 났다.
긴 신혼여행의 여독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나니
연극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말로만 듣던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무대 뒤의 공허함'이 이런 건가 싶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온전히 주인공이 되었던 무대의 도파민이 채 가시지 않아 새벽 비행기임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약 2주 간의 신행의 여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밀월여행에서는 달콤한 추억들을 한가득 만들었다.
사실 신혼여행 가려고 결혼한 사람...
지중해의 한낮의 태양과 사월에도 눈이 오던 스위스의 산봉우리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면 짓지 못했을 우리의 해맑은 표정들까지
살면서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당분간은 행복할 것 같다고 메모장에 적었다.
찾아와주신 하객분들께 감사 인사를 담은 문자를 돌렸더니 잘 살아, 라는 마지막 축복이 돌아왔다.
그렇다, 앞으로 잘 살아야 한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마치 수능을 준비하는 고3처럼, 식만 끝나면 그 하루만 넘기면 다 될 것 같았다.
식 전날에는 긴장감에 전에 없던 두통도 왔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결혼식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그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린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가끔 티격태격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 한개 남은 만두를 양보하면서
육아 전쟁 속에서는 전우처럼, 또 더 지난 후에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염려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지?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유럽은 대학 시절 배낭여행 이후로 두 번째였다.
대학 시절, 가을날 뮌헨의 어느 공원에서 낙엽 쌓인 길을 손잡고 걷던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카메라에 담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나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저렇게 함께 늙어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월의 벚꽃 만개한 날 올렸던 결혼식의 마지막 행진곡이었던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라는 노래 가사로 시작한 우리의 결혼생활이
그때 그 가을날 낙엽 흩날리는 공원을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으로 점철되기를 바란다.
우린 왠지 늙어서도 한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을 뭉쳐 서로에게 퍽퍽 던질 것 같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