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배우러 온 호주
언어가 나를 만든다
나는 고급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어 전공자이지만, 이곳은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이다. 태어날 때부터 듣고 말해온 언어의 깊이, 한국에서 '꽤 쓴다'고 평가받던 글 실력도 여기서는 처참히 구겨져 나는 세 살짜리 아이가 되어 문법구조를 마음대로 파괴하고, 단어를 조합해서 의사를 전달한다. 곧이곧대로 번역한다면 분명 우스울 문장이다. 나는 한국인끼리 있을 땐 유쾌하고, 외국인들과 있을 땐 수줍은 사람이 된다. 나는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말을 삼킬 때도 있고 때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괜히 알아들은 척 했다가 무언가를 놓쳐 부주의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이다
잡은 손 같은 것이다.
나와 함께 지내는 이들이 진심을 다해 나를 대해주어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내겐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알 수 없고, 당신의 말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과 가까워질 수 없다. 그 사람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말을 한다는 것은 그와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마르하반, 에이먼!
소통의 장벽은 언어가 아니라 태도가 만든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알아들어야 하는 말소리들이 내겐 소음처럼 들리고, 지구 반대편에 혼자 똑 떨어진 것 같은 고립감을 느낀다. 모두가 웃으면 따라 웃는 시늉을 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소통의 장벽은 언어가 아니라 태도가 만든다. 영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넘겨짚고서 알아들은 척도 많이 했다. 때로는 그것이 참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미 했던 말을 다시 물어보고, 묻는 말에는 엉뚱한 대답을 하는 내가 그들의 눈에는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통의 장벽은 언어가 아니라 정확히 알고 싶다는 마음의 부재에서 출발할지 모른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물어보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스스로 소통의 장벽을 쌓아올렸다.
하우스메이트가 한국어를 알려달라고 한다
빅터하버의 언덕에서 떠오르던 시의 구절을 고스란히 영어로 번역할 수 없어 나란히 앉아있던 이들에게 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는 친구가 더 애틋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같은 나라 친구와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소통의 깊이만큼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할 수 있는 외국인 친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 이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설까 고민하며 서툰 언어로 나누는 대화가 더 진심이 담겨있을 수 있다. 투어 크루 중 너무도 친절했던 미구엘에게 아무 맥락 없이 "I like you"라고 몇 번을 말했던 일도 외국어라서 그 말이 가지는 부담감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일은 모국어의 그 말이 가지는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함도 알고 있다.
나는 하우스메이트 에이먼에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따위의 말들을 알려주며 생각한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때에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이 말들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하기 어려운 이 말들을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말하고 있을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 축복이라던데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진심을 말에 담아 건네며 살아야 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