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웅진지식하우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내가 잘못인게 아니라고 알려주는 책
게을러 보이는 제목과 달리 작가는 열심히 살았고, 우리 세대를 열심히 위로해 준다. 이런 류의 제목을 가진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많이 오른다. 베스트셀러에 많이 오르니까 많이 나오는 건가?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을 저격한 제목에 이끌려 온라인 서점에서 보게 되면 한 번은 클릭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면 한 번은 펼쳐보게 된다. 아, 이래서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리나 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 챕터를 다 읽은 후,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봐도 좋을, 소장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샀다. 모 작가의 모 에세이처럼 용두사미는 아닐 것 같았다. 역시나 내용이 좋았다. 구매하고 다음날 다 읽었다. 사기 전에 읽었던 한 챕터까지 포함해서! 그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가볍게 읽히는 데, 내용은 가볍지 않다. 이게 바로 셀링 포인트인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회사를 때려쳤다. 아무 대책없이. 내일 모래 마흔인데! 나도 대책없이 회사를 관둔 적이 있었고, 오랜기간 쉬었다. 작가도, 나도 특별해서 이렇게 산 것이 아닌,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경험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작가가 열심히 살게 되지 않게 된 이유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데(그래서 책 제목이 이러하겠지) 이와 같은 삶을 결심하게 된 생각의 흐름, 과정, 본인만의 결론 등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다. 위로만 하는 게 아니라 공감할 내용이 많다.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삶이 특별하지 않다. 대학 입시 4수한 거 빼고는 아니 이마저도 공무원 준비생에게 공감될 것이다, 난 공무원은 준비를 안해서, 그리고 포기가 빨라서..) 삶이 나와 내 친구와 주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느끼는 바도, 겪은 일도.
나와 다른 건, 이 작가는 글로 부지런히 생각의 흐름을 잘 정리해 읽기 좋게 기록했다는 점, 글빨과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점, 심지어 그림도 잘 그린다는 점, 그런데 그림책이 아닌 에세이를 썼다는 점 등이 아닐까 싶다.
나도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그래서 글 쓰기를 나름 배웠는데 그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언니오빠동생들의 실력이 엄청나서 포기했다. 아주 빨리. 그리고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업했다. 이 책 작가가 말한 것처럼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같이 공부했던 동기 중에 등단한 친구를 보니 어차피 난 안 됐을텐데 괜히 아쉽다. 하지만 괜찮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괜찮았고, 이 책을 읽은 후에도 이 작가가 부럽지만 괜찮다. 이 작가에게는 인세가 있지만 나에게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으니(그런데 왜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 걸까).
요즘은 꼰대들, 사회 기득권자들이 알려주는 인생 지침보다 청춘들의 자아 성찰 책이 좋다. 물론 유시민, 박웅현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을 좋아하고, 자주 꺼내 읽는다. 하지만 내 또래 사람들이 나와 같은 환경에서 고민하고 깨우친 걸 알려주는 게 더 현실감이 있달까?
앞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내 또래 사람들이 이렇게 잘 되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나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회 기득권자들에게 ‘너네 말이 다 맞지 않아!’ ‘그건 틀렸어!’라고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2018. 0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