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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Apr 21. 2023

무엇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행복과 불행,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불안의 이유

  학생들은 해마다 강물처럼 자기들을 타고 흘러가는데, 선생들만 그 흐름의 밑바닥 깊이 박혀 있는 돌멩이처럼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타인에게 얘기하는 것이기는 해도 스스로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를 쓰레기 같은 존재라 여기고 고독한 자학 취미에 빠지든지 아니면 타인의 일탈을 고발하는, 의심 많은 도덕군자가 된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中


  얼마 전까지 광고대행업체의 부름을 받아 한 회사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 광고회사는 자신들의 일이 방송작가의 이력에 썩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내게 생각보다 큰 금액을 제시했다. 그래서 일을 받았고, 막상 와서 보니 방송 제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업무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고, 광고회사의 자존심이 있으니 퀄리티는 끌어올리되, 꼭 가슴 따뜻해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고, 다만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기가 막힌 콘텐츠를 기획해야 했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월급을 생각하면 해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 선생님, 이대로라면 유종이 마냥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 돼서야 못하겠다 말하고 일을 그만뒀다. 과연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면 꿈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잘은 모르겠다만 아마 월급은 받았을 거다.


  "요즘 일 그만두면 병신이라던데 혹시..."


  작가 친구에게 요즘 일할 데가 마땅치 않다고 얘기했더니, 친구는 너무 성급하게 그만뒀다며 나를 나무랐다. 방송계가 이렇게까지 불황인 줄 알았으면 나도 더 붙어 있었겠지. 조금만 고생해라. 좋은 데 자리 날 거야.


  방송작가라는 게 원래 이런 직업이라지만 항상 일이 없는 순간에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못나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자존감이 낮아지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순간. 그리고 다음 달 카드값을 떠올리며 조금은 불안해지는 순간. 이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 불행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와중에 지인의 집으로 집들이를 갈 일이 있었는데, 역사에서 지체 장애가 있는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을 마주쳤다. 대단한 사건이 터지거나 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저분은 내일이 불안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건 또 아닐 것 같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거 같아서 그랬던 거 같다. 물론 나로서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절뚝이며 개찰구로 걸어가던 뒷모습이나, 입고 있 옷가지, 눈빛,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봤을 때 그의 삶이 가난과 맞닿아 있어 보였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지만 가난은 불행을 불러오니까, 게다가 아무런 기대나 불안 없이 내일을 맞이하실 것 같아서 그분의 인생이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깝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기대나 불안의 감정은 대체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작가 일이 돈벌이가 시원찮아 아버지를 따라 기술을 배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때려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일을 그만뒀던 이유는 나의 미래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술자'가 된다면, 10년 뒤의 나는 '숙련된 기술자'가 돼 있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해서 차마 아버지의 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가의 일이 더 적성에 맞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나가는 노인에게서 불행을 봤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하루는 내일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으니 나름 행복했어야 맞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건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아무리 어디로 튈지 모르더라도 불안과 함께 기대가 따라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기대는 사라지고 불안만 남았다는 것.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도 행복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지금의 나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해도 될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을 탓일 거다. 사실은 알고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기술을 더 배우지 않았던 건, 반복되는 일상이 싫었던 게 아니다. 나라는 놈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정을 찾고, 결국 답보상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애진작에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우리 형은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워 가정을 꾸렸다. 나는 내 삶이 불행해질까 봐 이어갈 수 없었던 그 길을 형은 꾸준히 걸었고, 15년 뒤의 미래를 그리는 형의 모습은 나름 행복해 보였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행복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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