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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Jul 16. 2023

우리는 다르니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별

  "의사가 정말 필요해요.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요."

  "그러니까, 댁이 "의사"를 찾고 있다는 거지요?"

  "부탁드려요. 절 불쌍하게 여기신다면, 의사에게 좀 데려다주세요..."

  "흠... 당신이 무슨 얘기하는지 거의 알 것 같구만. 그러니까 당신이 말 하려는 건..."

  "농담이 아냐,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츠게 요시하루 "나사식" 中


  "집에서 자면 공짜인데, 호텔 예약에 몇십만 원을 쓰는 건 돈이 너무 아깝잖아"


  연애하는 동안 호텔에 돈을 쓰기 싫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자, 여자친구는 나 몰래 호텔을 예약했다. 나는 호텔 프론트에 도착해서야 정확한 금액을 들었고, 그 금액만 40만 원이 넘어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내면 되잖아. 라고 그녀가 말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 맘이 편해질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짠돌이같은 남자도 여자친구가 호텔방을 잡는데 40만 원을 썼다는 걸 알면 그날의 데이트 비용은 어떻게든 본인이 내려고 하니까. 그녀의 지출이 그녀만의 지출은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그니까 나는 말이야... 40만 원이 아깝다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그 돈을 호텔에 썼다는 게 아까운 거야. 여자친구는 내 손을 잡고 들뜬 발걸음으로 방을 찾아다녔다. 엘리베이터는 어디서 타는 거지? 나는 그녀와 함께 우리가 묵을 방을 찾아다녔고, 길눈이 밝은 그녀가 먼저 방을 찾았다.


  그날 술을 마시고 호텔 외곽을 돌며 산책하던 중, 나는 여자친구에게 내 딴에는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몇몇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나름 철학적이면서... 웬만해서는 재밌다는 평을 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내 위주의 주제들이었고, 밤바람은 산뜻했고, 여자친구는 밤 풍경에 심취해 있었다.


  내 얘기 듣고 있어? 듣고 있지. 


  다음날 조식을 먹고, 계획했던 몇 가지 데이트 일정을 소화한 뒤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1박 2일 동안 내가 정확히 얼마를 썼는지는 계산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쓰고 나니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게 하나 있었는데, 호캉스를 즐겼다는 사실 말고는 내게 남은 게 딱히 없었다는 거다.

  말하자면 공허한 데이트였다. 나는 여자친구가 나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여자친구의 만족에 같이 충만해지는 사람마저 아니라서, 내가 만족하지 못했다면 그 어떤 걸로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쉬웠던 건 그런 거다. 뭐랄까, 여자친구가 돈을 냈으면 나는 군말 없이 그냥 고맙다고 할 수도 있었고, 여자친구는 내가 신나서 혼자 떠들어댈 때 고개만 끄덕여 줬으면, 그러면 조금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그래서 헤어졌던 것 같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다. 뭐랄까, 항상 조금씩 아쉬워서, 그래서.

  나는 마주 보는 것보다 나란히 앉아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사람과의 연애는 항상 허기지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도 그렇다. 아무리 사랑은 맞춰가는 거라고.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거라고 말해도 그렇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의 식단처럼, 아무리 맞춰보려 해도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내가 이별을 고했던 모든 만남 역시,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놓고 싶지 않았지만,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맞출 수 있으면 운명이라는 건 없는 거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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