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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y 03. 2023

예술, 삶, 전설이 되다

이반지하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퀴어, 노동자, 생존자, 유머리스트, 예술가인 저자 이반지하. 퀴어라 당당히 밝힌 제목과 퀴어한 표지에 끌려서 2022년 초에 덥석 끌어안았다가 모종의 이유로 2022년 말에 구입한 이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진다. 이반지하는 이 다섯가지 대표 정체성에 너무도 충실하다.


그래서 이건  거짓말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적당히 살고 하고 싶은   하자고 말하지만, 이반지하는  한순간도 적당히 살아보지 못한 사람만이 도달할  있는 깨달음을 모든 단어와 조사에, 모든 구절과 호흡에 숨겨두었다. 아니, 애써 숨기지도 않았다. 다만 이토록 숨가쁘게 마디마디 애써서 살아온 결론이, 그래봐야 완벽할  없는  삶과 우주의 원리임을 발견했다는  그런거다.




평생 평타라는 것(이 있긴 한가?)을 경험할 수 없는 평생 아마추어 댄서의 운명이라는 것만으로도 스펀지처럼 동질감을 흡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 추는 동안 틈틈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공부를 게을리한 죄로 벼락치기를 하면서 뒤늦게 발견한 (또는 등장한) 법칙, 쉽게 공감하려들지 말자. 그의 경험과 고통은 나의 그것과 다르고, 역사와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비슷해보이는 구간에서도 다른 리듬을 가질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탈을 쓴(?) 예술가이자, 맞는 말만 하는데도 언어유희 중독자라서 마디마디 재치가 넘치는 그에게 과몰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몰입을 하지 않기 위해 아껴 읽은 것은 덤. (대신 다른 책을 미리 읽어두었지만 리뷰가 미뤄지고 미뤄질수록 오기가 생겨서 다른 책을 먼저 완독하지는 않았다!)


장르가 '이반지하'  책은 얼핏보면 경수필이지만,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기 위해 유머감각을 총동원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배운 사람들(?)이라면 이면을 읽어내길 바라지만, 저자가 원치 않은 진지함을 굳이 부여하지 않겠다. 재미있게 읽고, 마음대로 읽고, 마음껏 읽으시길.  책이든 다른 책이든.




퇴사와 이혼 이야기를 빌어와서라도 써야할지 고민하는 브런치 작가라면,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작가라면) 유명해지고 봐야 하니까. 커리어 실패담은  대기중이다.


Coming soon.



이것은 삶이었다.

그냥 삶이었을 뿐이다.

닉네임이나 부캐 같은  아니라, 한국에서 

퀴어예술가로 산다는  자체였을 뿐이다.

-29p, 이반지하의 탄생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이상한 변태들일 뿐이고, 그것은 헤테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변태 헤테로들이 많은가.

-53p, 정상이라 미안한 친구들에게


이르고 인위적인 죽음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속에서 장례식과 조문객, 대접할 음식까지를 생각하는  걸맞은 나이나  우리에게 없는  같았다.

-70p, 얼굴들, 이름들, 말들




그렇게 신물나게 겪어놓고도 한국 노동시장이 내게 생계 이외의 너지 시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기대 아니면 절망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대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83p, 아래로 아래로 위로 위로


  단순노동이 아닌 곳들은 노동착취가  어마어마했고 무조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근무를 해야 해서, 그에 따르는 시발 비용에 시발 시간까지 고려하면  시간을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87p, 아래로 아래로 위로 위로


그런 두려움은 비싼 비용을 치르게 했다. 나의 건강이 되었든 집의 위치가 되었든, 문과 창문의 잠금장치가 되었든, 어쨌든 끊임없이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69p,  반지하


세상아, 너는 나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 선점하고 있음을 부디 쪼끔은 인정하길 바란다.

-180p, 젠더 쫓김이



하지만 모든 비법의 맹점은 비법을 행할 에너지 남아 있을 거라는 전제 자체에 있다. 시피가 소금을  꼬집 넣으라고 가르쳐는 줘도, 소금을 꼬집을 힘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는 레시피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것이다. -208p, 동반자여


우연히 어떤 성장과 노화의 아귀가 들어맞아 몸이 클래식하게 써지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불가능한 완전함 위해 도전하고 완전히 실패하는 , 그런데  실패가 실은 모두 각각의 클래식임을 받아들이는 부분 말이다. -328p, 중닭의 아름다움


정말 기묘한 외로움이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만들자 존재는 더욱 존재하기 위해 떠나간다. 그리고  과정을 지켜봄과 더불어, 남겨진 자기 자신을 견디는 까지가 만든 자의 몫이 된다. -349p, 대본 리딩 빈둥지증후군



살고 보기, 살아 남기. 읽고 보기, 유명해지고 보기. 그리고 언젠가 전설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아리송할땐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이반지하에게 배우기. 내가 야매임을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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