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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여행이 남긴 것

냅킨에세이, 계획여행과 무계획여행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지난 봄부터 모종의 이유로 평균 2천자 분량의 냅킨에세이를 쓰고 있다. 냅킨에세이를 론칭한 것은 티코스터 사이즈의 작은 냅킨부터 무릎담요처럼 큰 냅킨까지의 스펙트럼 안에서 짧게는 한 단어 길게는 인스타그램이 허용하는 분량에 (정말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댓글로 보충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능한 자주, 가볍게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이 것을 나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종종 현타가 오기도 한다. 서평의 경우 냅킨에세이가 인스타그램의 허용 분량을 가득 채우거나 댓글로 약간 넘어가고 미술관 리뷰와 이벤트의 경우 적정선에서 마무리가 되는데, 그렇다고 이 글을 처음부터 브런치나 블로그에서 시작하면 하세월이 걸리기에 차라리 인스타그램의 프레임으로 스낵콘텐츠를 제작하여 그것을 보완한 버전을 결에 따라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시하려고 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으로도 충분했던 소셜미디어였기도 했기에 캡션이 중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진으로 표현하기 충분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는 로직이 영상을 더 밀고 있고, 사진 10장만 있으면 누구나 근사한 짧은 뮤비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의 릴스 편집력이 갓 초보를 넘어서는 순간 장비(7년된 아이폰)의 한계가 와버렸고 뭐 또 이런 것 때문에 당장 새 폰을 사러 달려가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사진과 글로 버티는 중, 실제로는 이마저도 구성해 낼 시간이 없다.



짐바브웨 엘리펀트 힐 리조트


이미 6월에 끝났어야 할 아프리카 8월 여행이 결국 8월까지 넘어왔다. 이제 8월에는 9월 여행을 소환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작년에 써 둔 글이 있기에 '마이애미 9월', '시카고 9월'등의 키워드를 통해 검색유입이 되고 있는 양질의 미국여행 콘텐츠도 있다.


지금은 10월을 앞두고 시카고의 새 버전이 인스타와 브런치에 완결되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작년에 완결한 마이애미의 새 버전을 쓰고 있자니 매년 새로 쓰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든다. 그만 쓰고 몸을 움직여서 여행 자체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작품 사진은 봐도봐도 줄지 않는 부잣집 곳간처럼 볼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잠베지강 선셋크루즈에서 보는 사파리


짐바브웨 8월 여행(2018년)과 미국 9월 여행(2019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정과 그에 따른 각종 예약 등을 얼마나 직접 관여했느냐, 즉 내가 얼마나 준비를 했느냐일 것이다. 주요활동의 시간과 장소, 메인 숙소까지 정해진 (이 부분을 선물로 받은) 짐바브웨 여행은 그 시간을 포괄하는 항공권, 항공권에 따른 체류시간과 메인 숙소의 입퇴실(in&out) 시간 사이를 보충할 개인 숙소 1박을 예약하면 준비 끝.


이 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짐바브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로는 비행기만 총 4번을 탔고 공항 대기시간은 15분에서 8시간. 극단적으로 다양했다. 젊은 여행 고수님들과 다르게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미국만 겨우 만만해진 나에겐 일생일대의 공항투어였다. 그 경험 덕분에 공항 맞추기 게임(두뇌개발 앱 peak)의 달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항과 관련된 마인드셋을 하면 집중력이 무시무시해지는 마법이다.



가는 길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한 번만 환승


왕복 6개 항공편이라는 역대급 환승투어는 짐바브웨에서 귀국하고 약 1년 뒤에 또 다시 미국일주를 떠날 때도 큰 힘이 되었다. 첫번째 미국여행(2016년)은 말 그대로 뉴욕 '한 달' 살기 였다. 보급형 고속버스인 볼트버스와 암트랙 기차로 주변의 빅시티인 워싱턴, 필라델피아, 보스턴을 다녀왔고 8번가 뉴욕타임스 앞 광역버스 터미널인 포트 오소리티에서 뉴저지행 광역버스를 타는 방법도 배웠다.


무엇보다도 단순 경유지라고 생각했을 뿐 전혀 체류 계획이 없던 댈러스에서 1박 2일의 스탑오버를 하게 됐다. 댈러스에 도착하니 국제선 연착으로 국내선을 탈 수 없다며 환승객에게는 익일 새벽에 출발하는 댈러스-뉴욕 티켓을 새로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그 12시간의 딜레이에 필요한 숙박과 숙소에서의 석식, 다음날 공항에서의 조식을 바우처로 제공했다. 장시간 비행이 처음이라 힘들기보다는 신기하고, 갓 미국에 도착해서 흥분상태였던 나로서는 갑자기 댈러스에서 호캉스를 하게 된 자체도 그저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행 하수인데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인프라가 없는 (줄 알았던) 텍사스에서 공항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두려움도 느꼈다. 발음을 할 수 없는 Wyndham이라는 호텔의 셔틀을 타야하는데 안내데스크에 문의하니 대신 전화를 해주었고 겨우 버스정류소를 찾아냈지만 말문이 막혔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이미' 출발했다는 말을 못해서 당황해 동동거리는데 쉐라톤 셔틀에 타고 있던 노부부가 한국인이라 통역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천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동동거릴 이유가 없었는데, 그때만 해도 여행의 변수에 면역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 3년 동안 뉴욕을 그리워하며 <가십걸>을 수없이 봤다. 디스토피아 로드트립의 명가인 <워킹데드>와 전용기로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크리미널마인드>도 새 시즌이 업데이트 될때마다 앞부분과 연결하기 위해서 오버랩했다. 첫 여행에서 국내선을 탈 줄 몰라 시도하지 못했던 시카고와 뉴올리언스가 아른아른했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뿌듯한 2019년 재즈투어의 주요도시가 그렇게 정해졌다.



짐바브웨 관광지에서 공연하는 현지 아티스트들


시카고와 뉴욕에서 살인적인 물가의 차가운 도시에 시달릴 것을 감안해, 올랜도와 키웨스트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마이애미 벽화거리와 해변, 웨스트 팜 비치의 노튼 미술관에 집중하기로 했다. 짐바브웨 여행에서 자신감을 얻은 비행기 환승 경험으로 거침없이 국내선을 타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공항만 생각하면 긴장을 한다. 서로 다른 세 개의 항공사에 마이애미, 뉴욕, 시카고행 국내선을 예약하고 오히려 버스를 과감하게 예약했다. 지난 볼트버스 경험을 살려, 2층 버스라 더 저렴한 (대신 조금 무서운) 메가버스로 뉴욕-워싱턴-애틀랜타-뉴올리언스-휴스턴까지 총 4번의 이동을 하는 로드트립을 기획했다.


그런데 모든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자유여행을 이토록 치밀하게 준비하다보니,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자라났다. 전년도의 짐바브웨에서는 포토존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놓친 곳이 있었나? 뷰포인트와 호캉스를 충분히 즐겼었나? 사피엔스와 라틴아메리카 무곡, 아프로 쿠바 음악의 고향에서 내 리듬을 찾았는가? 언제부터 난 막춤을 출 때마저 남의 시선을 의식했나?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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