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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25. 2023

예술대학 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15년 경험

비비언 고닉 <상황과 이야기>

처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84p, 맺으며




​취향이 통하는 책벗들과 신뢰하는 역자들이 안내한 비비언 고닉은 생존작가 중 (내 마음 속) 명예의 전당에 오른 몇 안되는 작가다. 그녀에 필적할 사람은 리베카 솔닛 정도? 그녀 자신의 관심사에 분명 한계가 있(189p)다고 말한 것처럼, 내 관심사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예술대학 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15년 경험의 집약체인 <상황과 이야기>는 논픽션을 쓰기 위해 논픽션을 읽어내고 집필 동기에 대한 적확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탐구하는 과정을 (한계가 있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따라가보는 교재이자, 책소개책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 많다.


책소개책을 꾸준이 읽어서 남편의 성으로 알아본 이자크 디네센(=카렌 블릭센)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짧았지만 이름만 들어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핵심 주제를 간접적으로 알게된 충격은 오래 갈 예정이다. (빨리 읽어야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에 등장했던, 진실을 말하는 페르소나는 이제 그녀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논픽션의 한계는 '나의' 논픽션 전략의 한계였다.


에드거 앨런 포를 닮은 페르소나를 끌어와 약간의 허세로 급마무리를 하는 행위는 이제 픽션에게 물려주고 (물론 갈길이 멀고 멀다. 그럼에도 17년 만에 두번째 단편을 완성했으니 세레모니의 주간인데, 방금 12시가 넘어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다시 아기처럼 배움을 시작해야지.) 논픽션은 고닉의 숙제부터 하기로 했다.


최고의 논픽션 작가가 제시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보다 급한 집필계획은 없다. 이 숙제만 끝까지 해도 책 한 권이 나오는 건 물론, 마지막 숙제는 쓰던 원고(마침 있다! 심지어 버전 2의 페르소나가 쓰고 있던 첫 이야기)를 고닉에게 배운 바를 적용하여 퇴고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교재인가. 다만 고닉이 알려준 '읽는 법'을 향후에 적용하고(숙제 중 평론도 있다! 마침 독서계획에 김애란 작가의 에세이도 있다.) 그에 기반한 습작 미션을 완수해야 이 수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응용 과정에서 흐지부지 되기 때문에 '작가, 교육자, 학생을 위한 가이드'가 첨부된 교재를 읽어도 예술대학 석사 과정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이 책을 16,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실전응용 숙제 5번이 적힌 지면을 넘기면 독자 북펀드 목록에 내 이름이 나온다.




​감상적인 자존심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있는 단단한 진실에 닿을 때까지 불안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독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6p, 들어가며


드라마가 깊어지려면, 괴물의 외로움과 무고한 자의 교활함이 보여야 한다. -43p, 에세이


에세이를 거울삼아, 인정하기 두렵고 창피한 일을 마주하는 어려움을 비춤으로써 서서히 더 깊은 통찰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 이해에 도달하기를 꺼린다는 진실 말이다. -56p, 에세이


작가와의 동행이라는 맥락 속에서 독서는 언제나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 -92p, 에세이


​함께하면 숨통이 트이고 외로움도 소외감도 분노도 사라지는 우리의 중심핵, 진짜 우리 자신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 일반적인 재앙(폭설, 실명, 근친상간, 중독)이나 무작위적인 정치적 불행(계급, 인종, 성)으로는 설명하거나 조명할 수 없는 나.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되어가는(becoming)' 인간, 우리 시대의 말로 하자면 참다운 나. -109p, 회고록


자아의 고독이 진정한 주제라면, 자신을 훨씬 넘어선 주제를 필터로 삼아서 말할 때 일반적으로 더 좋은 회고록이 나온다. (중략) "나는 어느 세계 기업에 관해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나 자신'이야말로 회고록이 전하려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158p, 회고록




얇고 농축된 책의 여운은 오늘 출간되는 비비언 고닉의 비슷한  <멀리 오래 보기> 달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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