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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03. 2022

어차피 인생을 헤매는 중이라면 길 위에서 헤매 보자

에피,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저자 개정판 제공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이상하게도 완치 후를 생각할수록 삶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들'의 다른 이름은 곧 '못해보고 죽는다면 아쉬울 것들'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언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11p, Prologue


여행작가이자 블로거인 에피님의 포스팅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이런 게 기운이고 에너지구나, 이런 사람이 셀럽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인생은 맑은 날, 흐린 날, 비가 오는 날, 추운 날, 더운 날의 연속이다. 치료의 시간은 내게 장마 같은 나날이었다. 장마에는 오늘 참는다고 내일 비가 그친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바꿀 수 없는 날씨에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튼튼한 우산을 들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물이 튀면 튀는 대로, 옷이 젖으면 젖는 대로, 실컷 걸을 것이다.
-56p, 여행을 떠난 이유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는 에피님의 가장 힘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분명 에피님의 밝고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도 내용상 어쩔수 없이 조금은 엄숙한 분위기를 겸비하고 있어요.


지금은 훨씬 건강하고 밝은 분위기로 지내고 계신 에피님이 이십대에 암 진단과 투병을 겪어내는 동안 마주했을 공포와 슬픔, 괴로움들을 이렇게 편히 누워서 무덤덤하게 읽기엔 어쩐지 미안하기도 했는데, 더 일찍 못 읽어서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시차는 분명 존재한다. 스페인과 서울이 여덞 시간 차이 나는 것처럼, 중국 전역의 똑같은 시간이 실제로는 똑같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나에게는 나의 시간이 있다. 사회의 베이징 타임에 나를 맞추느라 애쓰지 않고 묵묵히 나만의 시간을 걸어가고 싶다. 세상과 얼마간의 시차가 나더라도. -93p, 시차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함부로 그들의 행복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가난과 행복은 전시품이 아니다.
-119p, 행복과 가난


지난 겨울에는 친구를 잃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다른 모든 취미와 마찬가지로 독서가 주는 최대 이점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감정을 쏙 뺀 실용서나 외국 소설이 그나마 멘탈 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한편으로는 글을 통해 읽기치료와 쓰기치료를 병행하면서 더이상 에세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픔을 겪고 성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 기특하다고 자축도 했습니다. 각자의 고통을 글쓰기로 정면돌파하는 작가님들의 에너지가 제 영혼에도 양분이 되었고, 그 피날레를 에피님이 장식하게 된 것 같아요.


문득 에그타르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고 예쁘지는 않아도,
모난 곳 없는 동그란 속과  
달콤한 크림을 머금은,   
꼭 흰자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한 입의 에그타르트!
-156p, 에그타르트 같은 사람
까만 밤 야경을 담은 머루 같았던 언니 눈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타인의 취향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게 애정이고 사랑이라고.
-182p, 타인의 취향


막상 책장을 넘기다보면 아찔하면서도 대체로 웃픈 장면의 연속입니다. 그 또한 에피님의 정면돌파에 의한 쾌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너무 슬픈 사랑에 잠겨 있으면 아픔이 예상되는 책에 손이 안 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해도,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가 절대로 슬픈 책이 아니란 것 만큼은 알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본 리뷰는 초판을 구입해서 읽고 작성하였으나, 사진은 저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정판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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