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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10. 2023

처음 만나는 도덕경, 처음 만나는 자유

바이즈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

생각, 견해 등을 나라고, 혹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원인이야. 생각은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고, 견해는 그저 어디선가 듣거나 읽은 지식의 모음일 뿐인데, 그것을 내 생각, 내 견해라고 집착하기 시작하고, 그 허상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고 감히 행동해. -179p, 삶과 죽음에 대해 2




싸이월드 영화평을 블로그에 옮기려고 생애 첫 블로그를 만들었다. 개시도 못하고 삭제된 그 블로그의 이름은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였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모든 시적인 표현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도덕경은 '시'입니다.


(중략)


노인(노자)이 말하는 것을, 독자가 그대로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노인은 단순하고, 쉽고, 명쾌하며, 위트 있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며, 또 재미있게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넬 것입니다. -5p, 서문




시카고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배경으로 산책 사진을 올리면 '드레스 예쁘네요~'라는 댓글이 달린다. (많지는 않다.) 예쁨은 아무리 받아도 질리지 않고, 그 맛에 사진을 올린다. 난 허세가 충만하지만 거짓말은 안 한다. '아니에요~ㅁㅁ님이 더 예쁘세요.'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고맙다고 한다.


봐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누워서도 생각하고, 시간이 많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은 '문장이 알아서 마음속에서 해석되기를 기다렸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p, 글을 마치며




고전을 각잡고 덕질해 본 적이 있는가?


바이즈 작가는 자신의 언어로 소화할 때까지 <도덕경> 원문을 무한반복했다.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쉬운 일상의 언어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남다른 초독을 선사한다. <도덕경>의 취지에 어긋나는 내 자랑은 않겠다. 이 책은 '책에 의존하지 않는 책덕후들의 책'이다.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해설자인 바이즈 작가의 현대 한국어를 따라서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어떤 해설서는 해설자의 박학다식이 시선강탈을 하고 어떤 책소개는 소개자의 말끔한 미모가 시선강탈을 할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책에 담긴 의미나 지혜가 한 번에 기억될 리 만무하고, 기억된다 한들 그것은 독자의 지식이나 생각이 아니다.


실행과는 거리가 있다.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는 노인의 위트, 노인의 개그욕심까지 읽어내고 전달하는 책이다. 동의하고, 기억하고, 실행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나 썼다고 자랑하거나,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노인이 어찌나 자랑을 하지 말라고 반복하시는지!


자랑에 살고 자랑에 죽는 나는 자랑의 뒷면에 자리한 그림자를 직면해야 했다. 자랑을 안 하지는 못하겠고, 자랑을 대하는 마음에서 그림자를 걷어보려 하는 중이다.  


나의 서재가 곧 나를 의미한다는 생각은 자아비대증을 부른다. 서재는 인적 네트워크일 뿐이다. 내게 지혜가 부족할 때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보조배터리 같은 언어 창고다. 내적친밀감만 있는 지인인 듯 지인 아닌, 작가들의 언어 창고. 그걸 '내 생각'인양 말하는 행위는 기만이다.


스펙트럼이 넓은 서재는 나의 포용력일 수도 있지만 지적 허세일 수도 있고 그저 물욕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이가 귀해서 책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책에 부여되는 여러 의미 때문에 물욕의 연장선에서 책을 들인다. 다른 물건보다 소비의 죄책감이 훨씬 적기도 하고.




언어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과 '언어'와 '나'라는 동일시를 한 번 멈춰봐.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나 없음', '도', '무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경험해 볼 수 있을 거야.

-87p, '도'는 개념이 아니야




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식을 취함으로 흔한 오류를 사전에 방지한다. 해설자는 책을 매개로 독자와 노자를 이어줄뿐이다.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다니까.


독자는 노자의 목소리를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의 모국어로 들을 기회를 가진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읽다가 좀 쉬고 산책하고 낮잠을 잔 후에 다시 읽어보자. 읽다가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으니까. 책을 마주하고 멍 때렸다면 다음 날 다시 읽어보자. 원래 '시'는 그런 거 아닌가.




어려운 책을 해설하는 대단한 '나'가 아닌 잃어버려도 괜찮은 '나 없음'의 수고로움으로, 기댐에 사랑으로 보답하는 해설자 바이즈 작가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때로는 달이 아닌 손가락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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