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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14. 2023

작가 되는 과정,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과정

장강명 르포, <당선, 합격, 계급>

상을 못 받았으면 '오바마가 휴가 갈 때 가져간 책' 같은 타이틀이라도 있든지. 한국 독자에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당위성을 줘야 먹혀요. (한 편집자의 말) -49p
배가 고픈 예술가는 그가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399p


책을 고르는 기준, 서평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내용, 작가이자 독자라는 정체성까지 고루 점검을 하고 비로소 '다시 태어난' 상태로 소개해야 하는 책이다.


과연 나는 미등단 작가에게 공정한가?


어떤 이에게는 (계급이라는) 성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대개 스스로 '안다'고 확신하거나 '배제되었다'고 주장하기 바쁠 테지만.



관문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부문에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은 대학 나온 지원자가 조금 더 낫겠지.'라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배제가 일어난다. -286p
그렇게 간판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데까지 이르고야 만다. 그때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위한 투쟁이 된다. -312p
들어가기 어렵지만 동문으로든 서문으로든 한 번만 안으로 들어가면 귀족이 되고, 거기서 안주한 채 바깥사람들을 깔보게 되는 성이 한국 사회에 너무나 많다. -422p

구성


저자 장강명은 '작가'의 로드맵과 '일반인'의 로드맵을 병치한 구성으로 책을 썼다. 본인 성향에 따라 골라 읽어도 된다는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그러나 '나는 왜 일반인이 될 수 없나'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내게는 이 '부록'처럼 딸려온 부분이 더욱 유용했다. 왜 우리나라의 공채 문화는 이토록 수많은 꼰대를 양산했나. 그러므로 로맨스,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장르의 작가들은 '일반인' 파트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문학장의 일반적인 합의'와 정확히 일치하는 문학관을 지닌 소설가나 평론가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183p


성 안에서 할 법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저자의 용기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 <책 한 번 써봅시다>를 통해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 장강명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최대한 건조하게 표현하겠다. 그의 말대로 지나친 팬덤은 저자와 리뷰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작가 겸 독자의 미덕


장강명을 알게된 시점, 2021년에 최신작이었던 그 책, <책 한 번 써봅시다>를 아껴읽다가 2022년의 책으로 선정했다. 작가, 특히 지망생에게 용기를 주면서 무르익은 독자의 역할도 강조하고 있기에 휘리릭 페이지 터닝을 하지 못하고 계속 곱씹다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첫 책을 다 읽고 구입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5년 전에 출간된 이 책, <당선, 합격, 계급>도 비슷한 맥락이다.


세월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팬데믹으로 달라진 온라인 서평의 위상 정도. 그조차 기본 골자는 비슷하다. 나도 파워블로거, 즉 개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신간을 너무 빨리, 많이 읽어서 제대로 읽었나 의심스러운 서평가의 서평은 보지 않는다. 제안을 받는 협찬, 서평단의 경우 책을 읽고 싶으면 수락, 신청하는데 해당 책을 읽고 싶지 않거나 읽을 시간이 없으면 정중하게 거절한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속담은 독서에 대한 격언이 아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만큼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뜻도 된다. 인간 역시 경험재다. -311p
그게 우리 사회에서 장르소설을 보는 태도고요. 불량 식품처럼 취급하죠. (이문영 작가)
-380p


타인의 리뷰를 읽을 때는 이미 취향을 알고 있는 리뷰어(=지인)와 아예 모르는 리뷰어(=일반독자)의 리뷰일때만 참고한다. 애매한 관계의 리뷰어(특히 평론가)들은 친분을 떠나 서로의 서평을 참고하지 않는 것이 나을때도 있다. (취향이 너무 다르면 화가 날 수도 있다. 내 작가 왜 싫어해! 왜 이걸 그렇게 해석해!!) 북플루언서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인플루언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서평의 초안이 작성된 4개월 전을 기준으로 독자 겸 작가 겸 리뷰어였던 나의 정체성은 일단 리뷰어 부분에서 도드라졌다. 이 리뷰를 보실 분들도 리뷰어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서평에 관한 자료와 주장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는 보다 나은 서평가가 되자는 취지였다.


작가라는 정체성이 훨씬 커진 지금도 서평이 내 글 만큼 중요한 이유는 많고도 많다. 다른 이의 글을 읽기도 한다는 증명-이거 은근 중요한데, 책을 읽지 않는 작가들은, 그러니까 책 사진 정도도 찍어서 올리지 않는 작가들은 아주 조금 의심스럽다. 도끼병인가?-이기도 하지만, 내게 영감을 준 작가를 공유함으로써 같은 취향을 가진 독자와 친해지고 그들은 나의 잠재적 독자가 된다. 문장 필사가 좋은 훈련임을 좋은 작가/지망생들은 당연히 알 것이고, 내 생각을 보태는 것은 내 글의 범주를 확장한다.




여담


무엇보다도 우리가 논술이나 읽고 쓰는 수업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바로 그 지점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토론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독서 모임의 부작용을 언급한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니 이것은 생업이 아닌 이상 굳이 시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수리논술 강사였지만, 바로 그 이유-수학 담당이라는-때문에 학부모에게 의상까지 간섭받았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수업 대상인 어린이들의 경우 학부모 취향의 내 의상을 보고 '저승사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즉, 나의 원래 의상-발레리나 풍이 학생들에게는 더 호감을 주었다는 이야기. 학부모들은 내가 발레리나처럼 착장을 해서 나를 모르는 다른 고객들이 수학 선생으로 부적합하다고 단정할까봐 걱정을 했지만 이것을 선의의 오지랖으로 봐야할 지 아직도 의심스럽다. 그와 비슷한 사건이 '독서모임'에서 발생했다는 글을 읽고 뒷목을 잡았다.



'아, 저 사람이 자기 취향 고상하다고 자랑하고 싶었구나.'라고 느낀 적이 더 잦았다.추천하는 글 자체가 '이거 재미있다, 볼만하다.'라며 사람을 유혹하기보다는 '그걸 읽은 나'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다. -345p
당신이 정말 시대를 앞선 작가라면 바로 그 이유로 심사위원들이 당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437p

결론


등단에 목숨 걸 이유가 없다. 명예가 목적이라면 작가보다는 일반인의 로드맵을 추구하자. 일반인 로드맵에서 명예를 추구하면 적어도 로스쿨 학생이나 대학원생, 공무원 같은 타이틀이 생긴다.


장강명 시대에 따로 또 같이 공모전을 준비했으나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명예 때문에 일반인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사라는 '직업'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직업'은 어느 시점부터 유효한지가 매우 애매하다. 등단? 유명세? 인세?


이게 모호하다면 이 책을 다시 읽자.


명함 없는 과외선생, 명함이 있었던 무명 연예인 시절보다 명함을 안 팠지만 정체성-자기 소개할 때 똑 떨어지는 멘트-면에서는 괜찮았던 초등부 학원 강사-영재 담당을 거쳐, 다른 연구소의 이름으로 출판된 공저서의 50% 개발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일반인 로드맵도 거기까지였다.


그 경력은 채 2년을 못채우고 끝났다. 일반인 명예는 박봉 앞에 무력했다. 일반인이 되어보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혀서 나의 로드맵에서 일탈한 결과는 처참했다. 다만 그 시절의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분야를 막론하고 덕질을 하면 충분히 저서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 경험이나 글쓰기 강좌는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일 뿐.


그 후로 약 10년 가까이 일반인 아님 로드맵을 추구했다. 알바생 겸 연습생, 알바생 겸 지망생, 퇴사자 겸 여행가, 창업가 겸 연습생, 창업가 겸 수험생.


명예는 남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무슨 짓을 해도 멋있다고 해주는 친구들은 '절대적으로' 소중하다. 내가 정말 아싸였으면 저 과정을 다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는 많이 사귀자.

 

모든 경험은 글감이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마지막 1년은 냅킨에세이를 쓰면서 이토록 산만한 나의 이야기를 과목별로 간추리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재수하지 않고 브런치 작가에 합격해서 반 년 만에 브런치 북 2개와 그동안 모아둔 원고 100여개를 발행했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은 서평보다 나의 이야기를 우선으로 했다. 두 번째 브런치북 이후로 다른 밀린 원고를 발행하다보니 남은 것은 밀린 서평 뿐일세.


그리고 마침 이런 서평이 있었다. 올해 새로 읽고 쓴 서평을 먼저 올리겠지만 작년에 벼락치기한 '고전'의 서평도 보충해서 올릴 것이다. 이 글도 올해 초에 작성한 초고에서 2배 이상 늘어났다. 어떤 날은 예전 글이 덜 미워서 그냥 올리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서평을 단정하게 써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오늘은 '여담'에 제대로 빠져버렸다. 굳이 가이드를 제시하지 않아도 바쁜 사람들은 여담이 나오기 전에 뒤로 돌아가거나 빠른 스크롤을 하실거라 믿으며. 다음 서평은 단정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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