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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03. 2023

인생이란, 가이드북이 없는 여행

러셀 로버츠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출판사 도서 제공, 제작비 지원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잠이 안 온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보자. 원제인 <Wild Problems>를 직역하면 사나운 문제들, 즉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결혼, 출산, 이직, 이사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들의 대답은 Yes or No 정도로 간단하지만 그 중 무엇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이다. 돌이킬 수 없는, 혹은 돌이키는 결정을 또 해야하는 그런 결정이다. 대체로 남들에게는 어느 한 쪽이 '좋아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반대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의 인사이트를 참고할 수 있다. 그 역시 다양한 관점 중에서도 특히 과학자나 경제학자 혹은 공리주의자 등 특정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참고했다. 그러나 러셀 로버츠는 본질에 집중한다.


알고리즘과 주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 사고와 경제적 결정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사소한 결정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은 행복을 마일리지처럼 모아서 큰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가?


오히려 저자의 '이스라엘 이주'와 같이 무모해보이는 결정, 당사자만이 의미를 알 수 있는 그런 결정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다. 다윈이 장단점 목록을 작성하고 반대 이유를 있는 힘껏 고려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결정을 내린 것 처럼 말이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결심에 대한 고찰이되 막연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흔한 자기계발서 특유의 동어반복이나 잘난 척도 없다. 오히려 본인이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흔한 경제학적 오류들, 즉 답이 없는 인생의 중대사를 경제적 지표로 따져보는 행위를 재고하며, '경제적 사고'가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일면 통쾌하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초 소양을 학습하는 것마저 이해득실을 따지는 요즘 사람들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관점을 보여준다. 철학적이지만 철학 그 자체가 아닌, 현실적인 마인드를 장착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조언은 간섭도 아니고 노파심도 아니다. 그저 '너 자신이 돼라'는 우리 안의 목소리를 꺼내준다.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영악해지려고 하는 걸까?


새삼 철학이 필요함을 느낀다. 목표가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테오도라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9장에 의하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 '답 없는 고민'을 하는 시간을 절약한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번 고민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고 난처한 문제들은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





지적 호기심을 적절하게 자극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 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한다. 어느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지 고민중인 청년, 결혼 또는 이혼을 앞둔 커플, 인생 2막 또는 나처럼 1막도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비혼 중년의 중심잡기, 뭐든 책으로 배우려는 사람들, 뭐든 수학공식처럼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해야할 일이 하기 싫을 때, '밥은 왜 먹나'와 같은 자조적인 농담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삶은 왜 사냐'의 문제가 된다. 어떤 커리어나 동반자를 삶에 들이는 것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지에 관한 문제다. 당연히 중요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돈을 더 주는 회사'나 '돈이 더 많은 배우자'는 나의 인간적 성장과 충돌할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이 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어느 정도는 음미하면서 읽기를 바란다. 나의 독서법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소화하고 생각을 파생시키면 같은 한 권의 책에서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실용서와 철학서의 경계에서 이 책의 독자들이 활자라는 표면만 걷어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정보 너머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독자 자신의 내면에서 반응하기 바란다.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신의 삶이 충만한지 자기만의 기준으로 진단을 해보기를 권한다. 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못할 것이다'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 제한, 늦었다는 판단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인생이 과연 시작은 한 걸까? 시작이나 하고 포기하는 중일까?


이 책에서 MBTI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여행에 비유하며 계획과 즉흥을 적절하게 조합하라고 한다. 여행 계획 마니아이자 보들레르처럼 여행 계획 자체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내게 더없이 만족스러운 레퍼런스다. 말 그대로 여행에도 적용되지만, 삶 자체를 여행하듯 살아가볼 수 있는 태도를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해보길.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책 속의 문장들



행렬은 정신 사납다. 무슨 뜻인지가 불투명하다. 스칼라는 깔끔하고 명확하다. 이 명확함 때문에 스칼라는 유혹적이다. 하지만 스칼라가 얼마나 쓸모가 있고 정확할지는 복잡한 정보를 단일 숫자로 변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귀퉁이를 잘라 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37p, 다윈의 딜레마


인간의 관심사는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날그날의 쾌락과 고통을 넘어선다. 우리는 목적을 원한다. 의미를 원한다.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속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열망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전반적 느낌(행복 내지는 일상적 쾌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넘어선 삶의 질감)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고 나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결정한다. "잘 산 인생"의 중심에는 이런 동경이 있다.

-77p, 천재들의 생각법





어디에 살 것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히 어디가 날씨가 더 좋으냐, 취업 기회가 많으냐, 인근에 여행할 만한 곳이 많으냐, 음식이 맛있느냐 등등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사느냐는 내가 무얼 경험하게 되느냐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한 문제다.

-108p, 인간의 성장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마를 방문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144p, 페넬로페와 108명의 구혼자





당신의 결정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당신의 본질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트레이드오프는 하지 말라. 진실하게 살라. 옳은 일을 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적어도 출발점은 이래야 한다. 테오도라의 경우 그녀의 원칙은 정직이었다. 몇 가지 원칙이 충돌할 때도 있다. 정직도 밀어낼 만큼 중요한 원칙(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

-191p, 성자와 청소부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책상에 앉아서 연구한다고 혹은 책을 찾아본다고, 전문가에게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루하루 실제로 겪어보면서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의 경험을 가져 보기 전에는 특정한 정체성을 띠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우리에게는 흔히 말하는 그 목표라는 게 없다.

-229p, 잘 산다는 것


의미, 목적, 사랑, 인간적 성장, 재능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슴을 노래하게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로 키워 낸다. -249p, 최고의 질문들




인생이라는 경로에서 커브를 돌 때마다, 큰 교차로를 지나야 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다시 읽고 있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유명한 고전을 읽고 감명을 받을 수도 있다. 당연히 그런 적도 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울어라'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살아있는 스승이 필요하다. 러셀 로버츠는 그런 스승이다.

(앞날개에도 있지만 팟캐스트 운영자이기도 하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고료를 받아 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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