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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24. 2024

열정의 중심

단편소설 <나머지정리>

퇴사하고 남은 에너지와 대출한도의 전부, 가장 힘이 넘쳤던 청년기의 한 토막을 바쳐, 수많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머금고 그저 좋아서 달려온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물러설 수 있는가?


표고는 간절했던 그림을 놓기 위해 잠시 공예에 매진했다. 비로소 덕업일치의 빛이 잠깐 반짝였으나 욕망의 속도를 현실이 따라가려면 보다 능수능란했어야 함을 깨닫고 물러나려 했다. 물러나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 어쨌든 이제는 물러났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재능이 있다. 다른 과업이 없다면 그냥 재미로 해도 좋지만 그러기엔 너무 사랑하는 재능, 너무 많이  맛을 알아버려서 적당히 즐길  없는 희열, 갑자기 떼어내려니 살을 찢는 것처럼 아플 때도 있었다. 살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끈이 떨어진 것을 남들이 모를때 적당히 즐기면서 다르게  궁리를 했고 덕분에 열정의 중심이 결국 이동했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자유라   있을까.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혹은 이것들이 제 운을 다하고 나서야 표고는 비로소 깨닫는다. 첫사랑은 한번 뿐이다.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사랑으로 지울 수 없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더라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도 상처투성이, 그러나 그보다 조금이라도 큰 욕심은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왜 사랑은 결국 상처가 되는 거지?




영신을 만나기 전에도, 첫 번째 약혼자를 추방하기 전에도, 스승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이 눈을 가려서 앞뒤 구별을 못하던 때에도 표고에게는 반려자의 공간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그림과 백년가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래서 누가 오고 가는 것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상처를 받았다. 그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사람은 자꾸 떠나가기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표고와 그림이 한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녀를 이 세계와 동일시했다. 본인들은 들고 나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머물러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표고는 표고대로 동료들의 열정이 식을때마다 마치 자신이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 이상한 동일시다. 그런데 그랬다. 늘 마음이 아팠다.




아주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이후로 입에 담지 못했던 말이다. 표고는 그림을 사랑했고, 그림에게만 모든 것을 내주었다. 그래서 적당히 즐기지 못한다. 아, 그건 사람들하고나 하는 장난이지. 예술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이 열정을 떼어내기 위해 그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녀는 대패질을 하고 가구에 나무 그림을 조각했다. 조각칼을 붓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고 몇 년 동안 나무 위에 나무를 새겼다. 지겨웠다. 표고가 다음 계단 바로 밑에서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땐 또 다른 목표가 생겼으니까. 이번에는 훨씬 성장이 빨랐는데 그 빠른 성장을 따라갈 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재료를 끊임없이 공급해야하는 세계는 근성만으로 버틸 수 없다. 자금의 흐름이 원활해야하고 뭐 그런. 회화도 마찬가지였다.


 



해금은 냉정한 구석이 있었다. 해금도 예술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않게 순수하고 뜨거웠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해금은 서운할 정도로 비즈니스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믿을 수 있는 한편, 그래서 표고는 결국 내가 포기해야할 운명임을 직감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살아남는다면 그건 표고가 아닌 해금이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흥망성쇠를 거쳐 어쨌든 버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금의 상태가 부럽진 않다. 그럼에도 그는 생존했다. 생존했음을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심지어 표고를 물 먹인 상당수의 빌런들도 생존했다. 아니, 그 뿐인가. 생존 이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지긋지긋한 물컵 정복기를 폄하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표고가 다른 사랑을 만나거나, 옛사랑과 재회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헤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는 사람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남 걱정할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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