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다시 봄이 오겠지>
없어진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사무친다. 몇년 전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막연하고 답답한 안타까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기어들어간 곳이었다. 예전에는 오래되고 낡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고, 그 건물의 정중앙에 내 집이 있었다. 그 집을 찾은 이후로 공간을 발견하는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희망한 입주는 당연히 아니었고, 심지어 퇴실은 더 절망적인 곳이었다.
그곳은 그럼에도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내가 자립한 장소, 자립하자마자 온전히 부서져 가루가 되었을지라도. 평생의 목표를 달성했던 곳. 마지막 날, 그 어수선한 모습은 일부러 기억에 담아두지 않았는데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창틀이나 타일의 틈새까지 박박 닦아서 반짝반짝 빛나게 청소를 마무리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런 건 게임 속에서나 가능했다.
현실에서, 어차피 며칠 안에 속수무책으로 더러워질 공간에는 품을 들이지 않는다. 직전에 살던 집은 신축이었고, 욕실 바닥과 아랫쪽 벽의 타일이 짙은 회색이라 얼마나 좋았던지. 가끔 마지못해 바닥을 닦는 척 하는 걸 제외하면 화장실 청소라는 숙제는 한 적도, 하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 집에서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만약에, 만에 하나 작은 인간이나 작은 동물을 데리고(모시고?) 살아야 했다면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에서 빠른 편집으로 청소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현실의 청소는 그렇지 않으니까. 특히 특수효과를 넣지 않아도 과장된 깨끗함을 표현하는 애니메이션은 일종의 클린 포르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인테리어 요소가 있는 게임에서 청소하는 퀘스트를 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직접 노동을 하지 않고 (게다가 비용을 들여 다른 사람의 노동을 구입하지도 않고) 입주청소를 마친 뒤 티끌하나 없는 새 집에 입주해보는 로망이 있다. 실현불가능한, 혹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상당히 큰 그런 것들.
멘탈도 그렇게 청소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흥미로운 사실은 물리적 공간보다 정신적 공간을 비우는 것이 더 까다로운 일이다. 비유적으로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마음이 정말로 비워진 적이 과연 있긴 할까?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아무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찜찜한?) 그런 마음이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매일 마음을 비우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뭐가 들어앉을지 모르는데, 대체로 그렇게 들어앉는 것들은 환영할만한 것이 아니다.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사라진 친구들을 생각한다. 영원한 소멸의 욕구를 달성한 친구는 오히려 정신적인 동행을 하고 있기에 일부러 기억을 소환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냥, 항상 곁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보다는 잠적한 건 분명 아닐텐데,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있다. 어떤 친구들은 일부러 직접 찾지 않고 소식을 전해줄만한 친구에게 물어본다. 별일 없으면 그냥 놔둔다. 어떤 친구들은 그런 연결고리가 없다. 연락이 닿았을 때 되는대로 소식을 주고 받다가 또 흐름이 끊기면 그대로 지나간다. 새해 인사라도 해볼까. 그런 생각은 매년 하지만 한두해는 정말 경황이 없었고 그런 시간이 쌓이고 나면 어색하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아직 충분히 많은데 왜 그런 수고를 하겠는가.
이상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고,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해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하면 우연히 마주쳐도 더이상 반갑지 않게 된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우리를 갈라놓는 어떤 부류에 속해버리는 시간이 그 틈새를 파고든다. 가끔 양심의 밑바닥을 한번 들추어서 그 안에 썩고 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걸 주기적으로 꼭 해야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그걸 하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의 게으름으로, 어떤 우정은 자연소멸한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내 자격지심일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폐부를 찌른다. 내가 그때, 여유가 있어서 널 만났던 것이 아닌데, 네가 필요해서 만났던 것이 아닌데, 추억을 나눌 사람이 너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