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다시 봄이 오겠지>
무리를 형성하는 건 왠지 구차하게 느껴진 적도 많았다. 그녀들과 함께 입사해서 결국 나만 남았던 그 회사에 이르기 전에는 새로운 조직이나 집단에 적응하는 과정이 크나큰 고역이었다. 어쩌면 그녀들 덕분에 처음으로 남겨진 사람이 되어보긴 했으나 혜미의 입학과 록시의 퇴사가 맞물려 딱히 구심점이랄 것도 없던 우리의 관계는 어느새 끝나 있었다.
지금의 회사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렇게 남겨진 내가 나 자신의 퇴사 타이밍을 놓치고 그럭저럭 관성이 생겨버려서 '그래, 조금만 더'를 무한반복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봐야 일 년 몇 개월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적응해 보고 버텨보고 남아본 경험을 살려 직종변경을 했을 때 활용했다. 탄탄대로나 엄청나게 근사한 대안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 모험을 할 용기가 부족할 땐 둥글둥글한 척 굴러가 볼 필요도 있었다.
혜미의 전언에 의하면 록시는 우리가 함께 일했던 회사에서도 은근한 괴롭힘과 따돌림을 겪었다고 한다. 이미 현장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혜미는 정확한 상황을 모르지만 아마 나도 나 스스로를 안착시키기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록시의 난처함을 발견할 여유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우리와 함께 시작한 주말마다 록시가 어느 틈에 사라졌던 것도 순수한 록시의 의지라고 보긴 어려웠다. 록시에게 다가오는 다른 친구들과 호기심에 어울려보고 그다지 연속성이 없었기에 다시 우리와 함께 출발해서 매번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우리, 그보단 내가, 록시의 혈기(?)를 빙자해 방치했다는 자각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록시언니는 그동안 힌트를 빵조각처럼 흘렸는데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거야."
"둘이 꽤 친하지 않았어?"
"언니 기다리면서 두어 번 같이 밥 먹고 차 마셨지."
"음. 그냥 죽이 잘 맞은 것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록시언니가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대수롭지 않게 흘린 것 같아."
"그러고 보니 퇴사 얘기할 때도 내가 좀 무심했네."
록시가 회사에서 나에게 의지했던가. 정작 록시가 나가고 남겨진 나는 그녀의 빈자리를 느낀다기보다 그저 가벼워진 것 같다. 그건 록시가 내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록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앞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여지를 주지도 않았는데 뭘 기대한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쨌든 나는 패턴을 예상할 수 없는 록시에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너무도 혼자서만 씩씩한 록시를 무작정 따르기도, 자기만의 길을 가기에도 아직은 세상이 두려울 수 있는 혜미의 경우 은연중에 나에게 기댄 것을 알고 있다. 차라리 이건 패턴이 예상되므로 별 부담이 없었다.
"록시언니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
"그래. 록시는 놀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아."
"그냥, 좀. 나한테는 얘기해도 되는데. 얘기해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거나."
"니가 빵을 안 주우니까."
"맞아. 난 그게 빵인지 몰랐어."
회사에서 록시를 괴롭힐만한 사람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록시에게 곁을 주지 않고 겉돌게 하는 무리는 대충 짐작이 갔다. 나 역시 그들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그저 일만 하고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조직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인 나와 록시에게 전체 회사의 규칙에 그런 사조직에 가까운 무리의 규칙을 추가하면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그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과 그럭저럭 업무적 관계를 유지하는 나와, 그마저도 물 반 빌런 반이었던 록시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언니."
"록시가 힘들었던 거 혹시,"
"이 과장이랑 친해?"
"아니. 난 너랑 록시 말고 친한 사람 없어."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았어?"
"나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어."
"난 그 사람이 젤 거슬렸는데,"
"록시도 가끔 얘기했었어."
"언니 느낌은 어떤데?"
"이 과장이 나랑 부딪힌 적은 없어서 록시 말을 흘려들었지. 그리고 록시가......"
"록시언니가 콕 집어서 얘기를 안 했지."
"내 말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