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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Dec 11. 2024

발화(發話)않고 발화(發火)하다

한강 <채식주의자>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이나 형제자매까지도-철저한 타인, 혹은 적이었을 것이다.

-96p, 몽고반점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

-237p, 나무 불꽃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264p, 나무 불꽃



​부커상 수상 직후에 읽었던, 초판 <채식주의자>의 1부는 고통 3부작이자,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시작하는 첫번째 노벨라였다. 2부인 ‘몽고반점’을 읽지 않은 채 십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기에 안 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읽으려는 결심은 쉽게 서지 않았다. 초판은 이미 사라졌고, 영어판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처분했다.


대신 메디치상 수상 직전에 <소년이 온다>를 힘겹게 완독했고,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노벨상 수상 이후 <작별하지 않는다>를 차분하게 읽었다. 나름 좋은 날을 골라서, 울다가 숨이 막혀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날을 골라서 읽었다.


지난 달 윤미 작가님이 사주신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은 어쩐지 자꾸 눈에 밟혔다. 마음에 걸려있는 책은 많고도 많지만 이만큼 얹혀있었던 책은 <인간관계론> 영어판 정도였을까? (완독하는데 8년이 걸렸다.) 물론 고진감래 그 자체인 <마담 보바리>도 여전히 잘 있다. (완독하는데 12년이 걸렸다.)




<채식주의자> 1부를 다시 읽고 좀더 섬세하게 읽어냈다는 자만심에 다음편 호기심을 잠깐 잊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안 멀쩡한 날이었음에도 약속한 것처럼 2부를 읽었다. (읽는 동안에는 도무지 끊을 수가 없어 생존욕구가 고뇌했다.)


어제였나? 유자차로 초기감기를 뗐다고 자만하다 곧 ‘몽고반점’에 과몰입하고 병세가 악화되어 비타민추가한 레몬차와 귤, 바나나를 주문하면서 칩거모드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밤낮으로 책 정리를 하느라 2년 동안 성실하게 모아둔 먼지를 마셔서 극적인 변화는 없다. 많이 자서 피로가 풀렸을 뿐이다.


​눈뜨자마자 ‘나무 불꽃’을 읽으려다, 마음이 어수선해 책 정리를 한번 더 하고(아직도 서너 번 이상 더 해야한다.) 바나나를 먹은 뒤에 읽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생각해보니 이틀에 200페이지 가까이 읽었다. (다른 책도 100페이지 이상 읽었다.) 어제가 전생같지만 그제는 서평센터에 갇혀서 탈진했으니 어제가 맞다. 그래서 피로했나.

 



각자의 이야기가 만나고 나서야 완성되는 전혀 다른 이야기. 기어이 2부를 만나 (내 속에서만) 해묵은 미스터리(?)가 조금 풀렸는데, 이게 다가 아닌 걸 아니까 3부로 돌진할 수 밖에.


그땐 왜 2부를 안 읽었을까. 그때 책을 들고도 안 읽었던 그 미련함이 미련이 되었기에 지금 모든 스위치를 끄고 맹렬하게 읽을 수 있는 거겠지.


또한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이 병행돼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했다는 건 아니다.) 속좁은 이들의 촌평에 흔들리지 않으려면(저자나 얼리어답터들은 얼마나 속터졌을지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내 그릇을 더 키워야한다.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63p, 채식주의자


그제야 그는 그녀의 표정이 마치 수도승처럼 담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해, 대체 얼마나 지독한 것들이 삭혀지거나 앙금으로 가라앉고 난 뒤의 표면인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 -110p, 몽고반점


​그는 어두웠다. 어두운 곳에 그가 있었다. 그가 이즈음 경험하는 색채들이 부재했던 그 흑백의 세계는 아름다웠고 고즈넉했으나, 그로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146p, 몽고반점


그의 열정어린 작품들과,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 같은 그의 일상 사이에는 결코 동일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간격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194p, 나무 불꽃



​살아있었던 죽은 것을 집어삼키는 곳에서 발음하는 언어와의 불화는 언제부터 맺혀있었던 것일까.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영혜를 둘러싼 세 사람의 이야기는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한반복을 하다보면 언젠가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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