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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Aug 26. 2021

영화 리뷰 <악마 군단>

세상 구하기 위해 몬스터와 맞서는 다섯 아이들

얼마전 연도별 국내 개봉 영화를 정리한 사이트의 글을 보다가 1988년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한 <악마 군단>에서 눈길이 멈췄다. 그리고 과거를 추억하며 리뷰를 쓰자고 마음 먹었다.


<악마 군단>은 우리나라에선 그 시절 추억의 영화가 되었지만, 미국에선 지금까지 몇 주년 기념 행사를 비롯하여 각종 인터뷰와 이벤트가 계속 있을 정도로 사랑 받는 컬트클래식이다. 그리고 1980년대 할리우드 가족 영화 계보와 유니버셜 몬스터와 연결성에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10대 소년인 숀(앤드리 고워 분), 페트릭(로비 카이거 분), 호레이스(브렌트 차렘 분), 유진(마이클 포스티노 분), 새롭게 합류한 루디(라이언 램퍼트 분)는 공포 영화와 공포 이야기에 푹 빠져 사는 몬스터 마니아다. 이들은 우연히 입수한 반 헬싱의 일기장을 통해 드라큘라, 늑대인간,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아가미 인간이 100년에 한 번씩 오는 날을 이용해 선과 악의 균형을 깨려는 음모를 알게 된다. 5명의 소년은 '몬스터 스쿼드(The Monster Squad)'를 결성하여 악이 세상을 장악하려는 시도에 맞선다.


1980년대는 영화 역사상 어린이/청소년/가족 영화가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조지 루카스가 기획/제작한 <이와크의 대모험>(1984), <하워드 덕>(1986), <라비린스>(1986), <윌로우>(1988),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기획/제작한 <이티>(1982), <그렘린>(1984), <구니스>(1985), <피라미드의 공포>(1985),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 등 보석 같은 작품들이 이즈음 쏟아졌다. <컴퓨터 우주 탐험>(1985), <스탠 바이 미>(1986), <야행>(1987)도 빼놓을 수 없는 1980년대의 유산이다. 독특한 가족/코미디/공포 영화 <악마 군단>(1987)도 이때 나왔다.


<악마 군단>은 '10대 소년들이 몬스터들과 싸운다'는 내용으로 <구니스>의 공포 버전처럼 느껴진다. 10대 소년들 설정(리더 아이, 괴롭힘당하는 아이, 괴짜 아이, 뚱뚱한 아이, 멋쟁이 아이)은 누가 보아도 <구니스>를 참고했음이 역력하다. 심지어 숀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메리 엘렌 트레이너는 <구니스>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악마 군단>의 미국 오리지널 포스터의 카피 문구는 "You know who to call when you have ghosts. But who do you call when you have monsters?(유령이 나타난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 안다. 그러나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로 <고스터버스터즈>(1984)를 노골적으로 노린다. <악마 군단>은 <구니스>스러운 아이들이 몬스터들에 맞서 <고스트버스터즈> 같은 활약을 펼치다가 <이티>처럼 마무리하는(어린 소녀와 프랑켄슈타인의 감동적인 이별 장면은 <이티>와 판박이다) 전개인 셈이다.



몬스터들은 전통의 호러 영화 제작사인 유니버셜 픽처스가 1930~1950년대에 선보인 <드라큘라>(1931), <프랑켄슈타인>(1931), <미이라>(1932), <울프맨>(1941), <해양괴물>(1954) 등 몬스터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일명 '유니버셜 몬스터'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유니버셜 몬스터들의 현대적 해석을 실현시킨 장본인은 유니버셜 픽처스가 아니다. 다름 아닌 1980년대 당시 중소 영화사로 현재는 소니에 인수된 트라이스타 픽처스가 제작했다. 트라이스타 픽처스는 유니버셜 픽처스에서 저작권 침해로 고발할 것을 우려했는지 몬스터들의 외형은 살짝 바꾸었다.


<악마 군단>은 유니버셜 몬스터들을 현대를 무대로 삼아 부활시키는 아이디어를 그럴싸하게 실현한다. 문자로는 몰라도 영상으로 몬스터들을 한자리에 부활시켜 10대 아이들과 싸우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건 간단치 않다. 슈퍼히어로 장르로 비유하자면 <어벤져스>(2013)의 성공과 <저스티스 리그>(2017)의 실패를 떠올려 보라.


의상, 분장, 특수효과는 발군으로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다. 도리어 CG로 점철된 오늘날 영화보다 나은 측면도 보인다. 몬스터들은 <터미네이터 2>(1991), <쥬라기 공원>(1993) 등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며 아카데미 4회 수상에 빛나는 거장 스탠 윈스턴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공중전화부스에서 경찰에 전화해 자신을 체포해달라고 애원하는 늑대인간의 변신 장면이 인상적이다.



공포/가족/코미디 장르이니 만큼 수위가 낮다. 드라큘라, 늑대인간,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아가미 인간이 총집합했음에도 불구하고 12세의 시각과 상상력에 맞춰져 끔찍한 묘사를 하질 않는다. 도리어 드라큘라에 마늘이 들어간 피자로 맞선다거나 늑대인간을 죽일 수 있는 은탄환을 동네마트에서 파냐고 물어보는 아이 등 귀여운 발상으로 가득하다. 전개 자체도 단순하다. 몬스터들의 부활에 맞서는 인류의 중요한 물건인 반 헬싱의 일기장을 숀의 어머니가 동네장터에서 우연히 구입한다거나 드라큘라가 자동차를 몰고 이동하여 다이너마이트로 공격하는 것처럼 황당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악마 군단>은 지금과는 다른 눈높이 때문인지 다소 폭력적인 구석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어린이 유머와 어른 유머가 마구 뒤섞인 탓이 아닐까도 싶다.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말을 내뱉고 학교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무엇보다 드라큘라가 어린 여자아이에게 느닷없이 욕설하는 대목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악마 군단>의 메가폰은 <나이트 크리프스>(1986), <로보캅 3>(1993)를 연출한 프레드 덱커 감독이 잡았다. 그는 <나이트 크리프스>에서 1950년대 할리우드 SF 영화의 존경을 바치고 <악마 군단>으론 1930~1950년대 유니버셜 몬스터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다. 안타깝게도 프레드 덱커 감독은 <악마 군단>과 <로보캅 3>이 연달아 실패하며 할리우드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반면에 프레드 덱커 감독과 함께 <악마 군단>의 시나리오를 쓴 영화학교의 친구 셰인 블랙의 행보는 화려하다. 그는 <악마 군단>과 비슷한 시기에 쓴 <리쎌 웨폰>(1987)이 대히트를 치며 할리우드 A급 각본가로 올라섰다. 이후 <마지막 보이 스카웃>(1991), <라스트 액션 히어로>(1993), <롱 키스 굿나잇>(1996) 등 굵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각본을 내놓았다. <키스 키스 뱅뱅>(2005)부턴 연출을 겸하여 <아이언맨 3>(2013), <나이스 가이즈>(2016), <더 프레데터>(2018)의 각본, 감독을 도맡았다. 프레드 덱커와 셰인 블랙이 <더 프레데터>의 각본을 같이 작업한 걸 보면 두 사람의 우정은 지금도 이어지는 모양이다.



1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악마 군단>은 1987년 8월 14일 북미 1280개 극장에서 개봉하여 400만 달러도 못 미치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비디오 대여 시장과 케이블 방송은 <악마 군단>에 또 다른 기회를 줬다. 홈비디오로 영화를 접한 마니아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며 어느덧 영화는 컬트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구니스>와 마찬가지로 <악마 군단>의 인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외국에선 <악마 군단>의 개봉 20주년, 25주년, 30주년을 기념한 행사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DVD, 블루레이도 발맞춰 출시한다. 유튜브엔 인터뷰, 행사 영상이 수두룩하다. 최근엔 <악마 군단>의 리메이크 논의가 오갔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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