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가사의 틈을 상상한다.
"그만하자. 너무 힘들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선지 일주일이 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더 이상 한심하게 그 사람 옆에 있는 게
자학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빠한테 뭐야?"라고 묻기엔
고대부터 내려오는 여성 특유의 합창이라
치부될 것 같아 꾹 참았던 날들.
친구가 장담하며 알려준 비법과
여성지에서 귀띔해 준 온갖 방법을
어설프게 사용하고 있는 내가 문득 비참하게 느껴졌다.
다신 비굴하게 붙어있지 않으리...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다신 내 인생에 들여놓지 않으리...
다 지워졌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찌든 담배냄새도, 이기적인 약속시간도
피가 파랄 것 같은 냉정함도, 당황스러운 솔직함도
은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도
소심함과 대담함이 섞여 완성된 그의 모든 것
... ... 너무 그립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핸드폰 진동이
천둥처럼 느껴지는 연약한 내 심장.
창밖에 빗소리가 들린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막 눈물이 난다.
눈물이 마음과 손잡고
마음이 발과 동조해
나를 그의 집 앞으로 데려간다.
그도 헤어짐을 겁내고 있으리라
그의 하루하루도 지옥 같았으리라
그도 울고 있으리라
그가 문을 연다
그가 비에 젖어 울고 있는 나를 본다.
"너 무슨 드라마 찍어?
비는 왜 맞았어?
얼른 들어와, 보일러 켜놨어
나 잘 거야. 거실 불은 니가 꺼"
......
노래를 듣다 보면 깜짝 놀라게 만드는 가사를 만납니다.
최근엔 '잔나비'의 가사가 그랬고
그 전엔 '장기하와 얼굴들'의 가사였죠.
당황스러운 신선함은 어쩔 수 없이 끌립니다.
코믹하지만 철학이 깃들어 있는 노래는
삼색 슬리퍼를 신은 동네형이 알고 보니 재벌 2세 느낌.
그런 묘한 매력이 우리를 세뇌시킵니다.
카리스마 넘치게 돌아올 동네형을 기다리며...
그러게 왜 그랬어 장기하 작사
그러게 왜 그랬어
왜 애초에 그런 말을 했어
이렇게 이 시간에 찾아올 거면서
비는 또 왜 맞았어
너 지금 무슨 드라마 찍어
그렇게 걸친 것도 없이
얇게 입고서 왜 그러고 섰어 들어와
얼른 들어와 씻어
보일러 켜놨어
나 내일 일 있어
어제도 잘 못 잤어
나 잘게 씻어 거실 불은 니가 꺼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아 또 왜 울어
나는 뭐 괜찮아서 이래
그렇게 모진 말도 잘만 했었으면서
왜 그러고 섰어 일루 와
얼른 일루 와
이렇게 안고 있으면 미친 듯이 좋은데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