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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선 Feb 12. 2020

그러게 왜 그랬어

장기하- 가사의 틈을 상상한다.


"그만하자. 너무 힘들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선지 일주일이 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더 이상 한심하게 그 사람 옆에 있는 게 

자학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빠한테 뭐야?"라고 묻기엔

고대부터 내려오는 여성 특유의 합창이라

치부될 것 같아 꾹 참았던 날들.  


친구가 장담하며 알려준 비법과

여성지에서 귀띔해 준 온갖 방법을

어설프게 사용하고 있는 내가 문득 비참하게 느껴졌다.

다신 비굴하게 붙어있지 않으리...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다신 내 인생에 들여놓지 않으리...


다 지워졌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찌든 담배냄새도, 이기적인 약속시간도

피가 파랄 것 같은 냉정함도, 당황스러운 솔직함도

은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도

소심함과 대담함이 섞여 완성된 그의 모든 것

... ... 너무 그립다.


천년을 산 산신령의 평정심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림사에 입성하는 절치부심을 품고 싶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핸드폰 진동이

천둥처럼 느껴지는 연약한 내 심장.


창밖에 빗소리가 들린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막 눈물이 난다.

눈물이 마음과 손잡고

마음이 발과 동조해

나를 그의 집 앞으로 데려간다.


그도 헤어짐을 겁내고 있으리라

그의 하루하루도 지옥 같았으리라

그도 울고 있으리라


그가 문을 연다

그가 비에 젖어 울고 있는 나를 본다.



"너 무슨 드라마 찍어?

비는 왜 맞았어?

얼른 들어와, 보일러 켜놨어

나 잘 거야. 거실 불은 니가 꺼"


......




'장기하와 얼굴들' 4집 앨범의
'그러게 왜 그랬어'의 상대를 상상해봅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깜짝 놀라게 만드는 가사를 만납니다.

최근엔 '잔나비'의 가사가 그랬고

그 전엔 '장기하와 얼굴들'의 가사였죠.

당황스러운 신선함은 어쩔 수 없이 끌립니다.


코믹하지만 철학이 깃들어 있는 노래는   

삼색 슬리퍼를 신은 동네형이 알고 보니 재벌 2세 느낌.

그런 묘한 매력이 우리를 세뇌시킵니다.

카리스마 넘치게 돌아올 동네형을 기다리며...  
 




그러게 왜 그랬어                                 장기하 작사



그러게 왜 그랬어

왜 애초에 그런 말을 했어

이렇게 이 시간에 찾아올 거면서

비는 또 왜 맞았어

너 지금 무슨 드라마 찍어

그렇게 걸친 것도 없이

얇게 입고서 왜 그러고 섰어 들어와

얼른 들어와 씻어

보일러 켜놨어

나 내일 일 있어

어제도 잘 못 잤어

나 잘게 씻어 거실 불은 니가 꺼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아 또 왜 울어

나는 뭐 괜찮아서 이래

그렇게 모진 말도 잘만 했었으면서

왜 그러고 섰어 일루 와

얼른 일루 와

이렇게 안고 있으면 미친 듯이 좋은데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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