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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Dec 16. 2019

요즘 난 성당엘 다닌다

스스로 충격적이다. 종교라니

 요즘 난 성당엘 다닌다.
스스로 충격적이다. 종교라니
매주 일요일마다 시끄러웠던 본가 근처 커다란 교회에 질려했고, 학창 시절 첫 번째 썸은 그녀의 부친이 목사로 있는 교회엘 가보자는 제안에 끝나버렸으며,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한국 강의에 기꺼이 출석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요즘 성당엘 자발적으로 다닌다.
물론 그 시작은 여자 친구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등록하게 된 6개월짜리 예비신자 교리반이었다. 타의로 시작된 종교생활은 12년 개근의 조기교육으로 빚어진 나의 쫄보력에 의해 조금씩 차올랐다.


내가 다니는 학원.jpg


 사실 십자가보단 만(卐)자가 익숙했다. 시골 중학교의 여름방학 숙제였던 산불조심 방범활동차 방문했던 ㅇㅇ사에서 나는 일찍이 절의 고즈넉함에 반해버렸다. 기억 속 그 여름, 그 시골 암자의 풍경은 평화 그 자체였다. 찡한 햇볕 아래 산들 부는 바람과 가볍게 울리는 절의 종소리, 숟가락으로 사과를 파 손주들에게 직접 떠먹여 주는 할머니의 미소. 그러한 절의 평화가 인상 깊어 주기적으로 국내의 크고 작은 절에 방문해보는 것이 작은 취미가 되었다.

 평화를 목격하고 싶어 찾아다니던 나의 부디즘 투어는 종교생활이었을까? 만약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이는 종교적인 장소라는 이유가 아닌 평화를 목격하기 위했다는 목적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통영의 어느 이름까먹은 절


 이러한 해석 속에서 사실 난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종교생활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면서 얻는 내면의 평화와 무자극의 자연을 목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시각의 평화는 다른 것일까

 믿음이 생겨서가 아닌 12년 개근의 DNA가 시키는 대로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 잠깐씩이라도 꾸준히 성당을 찾았던 나의 가톨릭 투어에서도 슬슬 평화의 목격담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낮의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의 채광에서 목격되는 컬러풀한 평화와 한밤의 성당 노오란 조명아래 수백 명의 조밀한 진심이 모여 울리는 서라운드의 평화

내가 찍은 건 아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러한 평화의 관전은 마치 영화에 빠지듯 점점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 머릿속에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아직까지도 전혀 목격되지 않고 있는대도 말이다.

  여전히 미사는 지루하고 귀찮다. 학기를 수료하듯 이제 곧 세례를 받게 될 예비신자이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계속 예비로운 신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어쩌면 꾸준히 고즈넉한 성당의 낮과 농밀한 성당의 밤을 목격하기 위해 12년 개근의 DNA가 한눈을 파는 어떤 조용한 시간에 홀로 성당에 방문할지도 모르겠다.

명동 성당(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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