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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영주 Oct 30. 2021

아버지를 그리며, 남자의 자리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투박하게 써 내려간 그의 담담한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서툴고 거칠게 살아왔다 그러한 희생이 당연했기 때문에 모든 자식들에겐 같은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러한 아버지의 매일매일이 이해할 수 없었다. 우직하게 사는 게 우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치만 우리가 간과한 것은 그의 모든 삶을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 


부모는 자식의 모든 삶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없다. 아버지가 나를 만나기 전 그 수십 년간의 잃어버린 그는 어디에 있을까.



남자의 자리_아니 에르노


#그는 거친 남자였고, 아무도 그에게 싸움을 걸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매일 웃지는 못했다. 그의 못된 성질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고, 가난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으며, 자신이 남자답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운명에 항상 행복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 어린이의 프랑스 일주>


#그렇지만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채소를 제대로 가꾸지 않은 지저분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거나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것처럼 나쁜 품성의 나태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파종을 흙에 뿌려야 하는 시간의 개념을 잃는 것이었고, 남들의 생각에 무감각해지는 것이었다. 때때로 악명 높은 주정꾼도 술이 잠시 깼을 때 정원을 잘 가꾸어 명예를 회복하지 않았던가.


#난 진짜 <문학>을 읽었고, 내 <영혼>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인생을 표현해준다고 믿는, <행복은 빈손으로 걷는 어느 신이다><앙리 드 레니에> 같은 문장과 운문을 옮겨 적었다


#그저 보여주는 것, 화자의 감정에 붙잡히지 않도록 칸막이를 없애는 것. 이 모든 것은 불투명한 인생을 밝히기 위함이다.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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