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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코는 왜 뾰족할까?

#뾰족하면 안 좋다며 #공기 시리즈 2편 #소리의 의미

by 고등어
저번 편에서 여객기의 코가 둥근 이유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전투기는 왜 뾰족한 걸까요?
공기 시리즈 2편입니다.
1편 : https://brunch.co.kr/@fly-fish/69

앞선 글을 마무리하기가 무섭게 바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전투기는 왜 뾰족한 코를 갖고 있는 걸까? 비행기 코는 둥근 모양일 때 공기저항이 가장 적다고 했는데 말이다. 전투기는 여객기보다 빠르게 비행하니 어쩌면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일은 여객기보다도 더 중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코가 뾰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날렵한 코를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사연이 있기라도 한 걸까?


1_2_3.png 전투기 코는 확실히 뾰족하긴 하다.

전투기와 여객기의 차이를 꼽아보자면... 일단 전투기는 빠르다. 여객기가 최대 시속 1000km로 비행한다면, 전투기는 빠르게는 시속 2500km 이상으로 비행하기도 하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빠른 속도가 코 모양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우리가 오른 비행기의 속도를 서서히 올려보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지 찬찬히 따라가 보도록 하자. 아, 그전에 공기가 흐른다는 것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 보자.


공기를 흐르게 하는 방법

압력과 소식


공기 중을 나아간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앞서 우리는 뾰족한 코가 왠지 좋아 보이는 이유를 이야기하며 코가 뾰족하면 공기를 잘 밀어낼 것 같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공기 중을 나아간다는 것은 곧 공기를 가른다는 것, 즉 내가 나아갈 곳에 있는 공기를 옆으로 치워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공기를 치워낸다는 것이 럭비선수 마냥 공기와 직접 부딪혀 튕겨낸다는 뜻은 아니다. 아래 축구공 주변을 부드럽게 흘러나가는 공기의 궤적을 한 번 보자. 공기는 공에 미처 닿기도 전에 옆으로 돌아가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공을 매끄럽게 피해 가고 있다. 이런 인위적인 흐름 말고도 계곡에 여기저기 솟아있는 바위 주변을 흐르는 물에서도 이런 모양을 볼 수 있다. 바위와 물이 부딪혀 물을 튕겨내지 않고도 바위 주변을 감싸는 흐름을 따라 계곡물은 흘러가곤 한다. 이처럼 유체를 가른다는 건 단순히 튕겨내는 것이 아닌, 매끄럽게 물체 주변을 흘러나가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기는 공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나저나.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공기가 공에 닿기 전에 미리 비켜났다는 점이다. 공기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눈이 달렸어도 공을 보고 피할 생각까지 했을 리도 없고... 막상 생각해 보니 이 당연한 흐름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새삼 신기한 면이 있다.


공기가 길을 내어주는 원리까지는 모르고 넘어간다 해도, 공기가 앞에 있는 공을 피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공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방법이 있긴 있다는 것이다. 흐르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작은 분자들의 뭉텅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분자들 중에는 물체에 맞닿아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물체에 부딪혀 밀려나게 되면, 튕겨 낸 분자는 주변의 분자와 부딪히며 밀어내게 된다. 부딪힌 분자는 또 주변의 분자를 밀어내고 이 부딪힘이 반복되면서 물체와 멀리 있는 공기도 "누가 뭐에 부딪혔나 보다..." 하는 정보까지는 알게 된다.


공기가 이리저리 밀리는 이 모습은 사람이 꽉 찬 출퇴근길 지하철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만원인 지하철에 탈 때면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흐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다닐 때가 있다. 이 때는 시선을 핸드폰에 고정하고 있어도 몸의 밀림에 따라 "사람이 많이 타는구나...", "많이 내리는구나..."를 알 수 있다. 출입구에서 떨어져 있어도 이리저리 밀리며 출입구의 소식을 전달받는 모습인 것이다. 공기는 공이든 돌멩이든 앞에 뭐가 있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눈이 있을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단지, 주변에서 밀어내니 밀리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분자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힘을 우리는 ‘압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유체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본질은 바로 이 압력에 있다. 물체 가까이서 밀리는 곳의 공기는 압력이 높아지게 되고, 이 압력이 주변 공기를 밀어내며 물체의 소식을 암묵적으로 전한다. 그 소식이 전달되며 공 근처에 흐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공기를 쉽게 가르기 위해서는 물체를 매끄럽게 비켜나는 부드러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흐름은 압력이라는 소식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으니, 공기가 압력을 통해 충분히 소식을 잘 전달받는 것이 부드러운 흐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Z77kg19cLC8VUpHZ76HdWnHabEc.jpg 물, 공기, 인파. 흐르는 것들은 압력의 변화로 주변의 소식을 전달받는다.


소식보다 더 빠르게

공기를 튕겨낸다면


한편, 소식이 전달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튕겨 낸 공기도 옆에 공기를 밀어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나아가 전체 흐름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다. 우리가 공기 중을 걸어 다닐 때처럼 물체가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면 공기는 물체 주변으로 손쉽게 비켜난다. 주변 공기에 압력이 전달되고, 흐름이 형성되기에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 우리가 걸으면서 공기저항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점점 빠르게 공기를 가르면 어떻게 될까? 주변 공기는 조금은 급하게 소식을 접하게 된다. 물체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물체가 밀어내는 부분의 공기가 오밀조밀 뭉치며 압력이 더욱 높아지고 소식이 과격해지면서 주변의 공기가 더 큰 힘으로 급하게 밀려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여객기가 비행하는 속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객기 역시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기가 서로 압력으로 소식을 전달하는 속도보다는 여전히 조금은 느린 편이다. 때문에 우리가 걸을 때에 비해서는 급할지는 몰라도 공기분자들은 비행기 코 주변으로 흘러나가는 흐름을 만들게 되고 비행기가 차지할 공간을 흔쾌히 내어준다.


1_2_5.png 흐름보다 빠른 소식은 충격적인 소식이 된다.


그런데 전투기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의 영역에 발을 디딘 비행기다. 문제는 이 속도 영역이 바로 공기가 소식을 전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영역이라는 점이다. 이 정도 속도에서는 공기를 가른다는 것의 의미가 매우 달라지게 된다. 소식이 전달되는 것보다 물체가 먼저 도달해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평화롭게 지내던 공기분자는 소리소문 없이 갑자기 등장한 물체를 코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던 물체를. 아직 소식을 전달받지 못한 이 공기분자는 움직일 동기가 전혀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럴 땐 공기분자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안이 벙벙한 공기분자는 물체와 말 그대로 부딪히며, 앞서 밀려오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공기분자들과 함께 강제로 튕겨나가게 된다. 이처럼 공기가 소식을 주고받는 속도를 기준으로 공기를 가르는 것의 의미는 변한다. 공기가 비켜나는 흐름을 만드는 것에서 직접 공기를 튕겨내는 것으로.


모든 소식이 뭉쳐 충격적인 소식이 되어 전달되면 당연하게도 엄청난 공기저항이 발생한다. 공기에서 소식이란 곧 압력이다. 즉 충격적인 소식은 굉장히 높은 압력을 가진 공기층이 되고, 비행기 앞에 일종의 보이지 않는 벽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가 충격파(Shockwave)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다.


이제 전투기 코 모양의 목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소식보다 빠르게 비행하는 비행기의 코는 앞에 켜켜이 쌓여있는 공기의 압력을 온전히 받아내며 압력의 벽, 충격파를 뚫어내야 한다. 전투기의 코는 송곳처럼 충격파를 예리하게 가르기 위해 뾰족한 모양을 띄게 되었다. 공기에서 소식이 전달되는 속도를 넘어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 남는다. 도대체 공기의 세계에서 소식의 속도라는 것이 무엇일까? 공기 흐름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는 기준이니 분명 중요한 속도일 텐데... 공기는 압력으로 서로를 밀어낸다 했으니, 결국 압력 변화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곧 그 속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기 중의 압력이 변하며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뭘까? 압력이 공기 중에서 퍼져나가는 것... 이거 왠지 들어본 표현인 것 같은데...?


1_2_5_2.jpeg 음속을 돌파하는 여객기인 콩코드 역시 뾰족한 코를 갖고 있다.


공기나라 소식의 속도

소리


사실 우리는 공기 중에서 압력이 퍼져나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귀를 통해 공기 압력의 변화를 ‘소리’의 형태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공기분자들 간에 소식이 전파되는 것은 곧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것이다. 즉, 그 소식의 속도는 곧 소리가 퍼져나가는 속도, 음속인 것. 그리고 전투기 코가 뾰족했던 것은 음속보다 빠르게 날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신문에서 보던 '음속 돌파'라는 단어에서 대체 소리랑 비행이랑 무슨 상관인 건지 궁금했었는데, 이제 의문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공돌이의 노트 #1
음속과 비행의 관계를 처음 경험했던 파일럿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또 목숨을 잃는 사고에 휘말리기도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 프로펠러 전투기 조종사들은 급강하 비행 도중 비행기가 파손될 정도의 엄청난 진동이 발생하는 것을 알았다. 비행기가 특정 속도에 도달하면 마치 벽에 부딪힌 것처럼 속도가 증가하지 않고 무서운 진동과 함께 조종불능을 경험했다고 한다. 소리의 속도에 다다른 비행기는 차마 비켜나지 못한 공기와의 격렬한 충돌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충격파는 엄청난 공기저항을 일으킨다. 형상저항과 점성저항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앞서 공기저항 중에서 형상저항과 점성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에 알게 된 음속의 벽으로 인한 저항을 충격파 저항(조파저항 - Wave drag)이라고 부른다. 이 충격파 저항은 다른 저항들보다 월등히 큰 편이어서 음속 돌파시에는 다른 저항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오로지 이 벽을 뚫는데 집중해야 음속을 돌파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기는 음속보다 느린 구간에서의 효율을 다소 희생하면서도 뾰족한 코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좀 공기를 이해했나 생각하며 뿌듯하게 마무리하려던 차인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온다.

바로 우주왕복선.


우주왕복선은 음속보다 한참은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한다.

근데 왜 코가 뭉툭한 거지..?


그건 다음 시간에.


1_2_4.png 음속을 기준으로 전투기와 여객기 코는 서로 다른 모양을 하게 되었다.





사진출처

https://pxhere.com/en/photo/1175750

https://newatlas.com/brazuca-world-cup-football-aerodynamics-nasa-mit-jabulani/32582/

https://pxhere.com/en/photo/1603138

https://www.getreading.co.uk/news/reading-berkshire-news/plane-escorted-raf-fighter-jets-23876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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