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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넷 Nov 27. 2022

“금붕어”

나는 금붕어다. 요즘 법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내 기억력은 금붕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분명 지난주에 배운 개념인데, 다시 보는 순간 처음 접한다는 느낌이 든다. 학부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해마가 쪼그라든다는 연구 결과가 사실이었나보다. 아니면 법이라는 학문에 요상한 마법이 걸려 있어 기억을 휘발시키는 것이던지.


이 휘발성은 글쓰기에서도 관찰된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접속해 내가 쓴 글들을 몇 개 읽어보았다. “맞다. 내가 이런 글을 적었었지”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달 밖에 안됐는데 이런 글들을 쓴 것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분명 글을 쓸 때만 해도 이걸 잘 이해했고 안 까먹을거라는 확신에 찼었다. 시간의 풍파는 이 착각을 산산히 부셔버린다. 이걸 당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는 또 이 글만큼은 안 까먹겠지 하는 자신감이 다시 생긴다.


망각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 실패 -> 다시 자신감 -> 실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다. 결국 인간은 기억에 대한 효능감과 착각과는 별개로 망각을 이길 수 없는 존재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는 대단하다.


현대자동차, 배달의 민족, 쿵푸팬더… 결국 브랜드라는 것은 인간의 뇌는 어차피 모든 것을 망각하니 “딱 단어 하나만 기억하도록 만들자”는 전략에서 기인한다. 구구절절 설명해봐야 인간은 금붕어라서 다 잊어버린다. 그럴 바에는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아내자.


좋은 대학에 다닐 때 내가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대학 타이틀은 그 자체가 나를 설명하는 간편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어느 대학 학생이에요. 이 말 하나로 간편하게 프레임이 잡혔다. 물론, 이 타이틀은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그다지 큰 효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선 우리 인류가 원시인 시절부터 얼마나 꿀 빠는 것을 추구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겪는 귀차니즘은 모두 DNA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브랜드로 정의되는 단어 하나만 기억하는 것은 인류의 본능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은 단어 하나로 한 개인을 브랜드화 할 수 있는 굉장한 도구다.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붕어처럼 기억력이 안 좋은데, 이런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의사’ , ‘변호사’라는 단어 하나로 한 사람을 설명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가성비가 좋은가. 유통기간도 평생 간다.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되어야 한다.


원문 링크 : https://m.blog.naver.com/no5100/222939514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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