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writing Jun 12. 2017

사랑에 관한 다섯 가지 시

2017 s/s 1차


 어쩌면 내가 시를 쓴 것은 긴 글이 써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긴 글이 써지지 않아 자괴감 들 때, 시 한 편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시를 쓰다가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역설적인 성향이 창작의 묘미인 것일까?

 오늘 공개하는 시는 전부다 사랑시이다. 딱히 계획하고 쓴 것은 아니다. 써보니깐 사랑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연애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애상적일 것이다. 그냥 어렴풋이 느낀 감정으로 사랑을 흉내낸 것일 수도 있다.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떠올릴 뿐이고 그 떠오른 것들을 쓸 뿐이다.  


시 1

민들레


마음 구석에 자리 잡더니
어느새 빼곡히 채웠다.

 뽑아보려 했지만
차마 뽑지 못한것은
그대가 예뻤기 때문이다.

어느덧 씨앗이 되어
내 마음 곳곳 날아 갈 때도
손쓰지 못한 것은,
내 마음 이미  그대의 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그대로 채워지고
다른 모든 것들은 죽을때도
당신을 태우지 않았던 것은
당신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Scene in the Sabrina claudio MV



시 2

Photograph


창문을 열고

한 곳을 잡아

조심스레 창문을 닫았다.

빛이 지나간 자리,

당신의 풍경이

남아있다.


나의 시간은

그 풍경 속에 멈춰있다.

그 찬란한 늪에서

헤어 나오기 싫은 난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을 수밖에

당신의 풍경 안에서

Scene in the movie Her

시 3

빈집


어느새 푸르게 바래진 벽돌에는

우리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행복했던 기억을 쌓아 만든 우리의 집은

덩굴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

그 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푸르게 바래진 벽돌에는

우리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내 마음속 용기와 그리움을 집어

덩굴을 걷어내고, 추억들을 분홍색으로 칠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추억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마음입니다.

Scene in the movie Laurence Anyway

시 4

스토커


"벌레는 빛을 쫓는다."

"그것은 너를 사랑하는 마음."


벌레는 빛을 따라 난다

몸이 타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비밀스레 따라 걷는다.

마음이 타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벌레는 자신에게 물었다.


몸뚱아리가 한 줌의 재가 되었을 때쯤,

나의 마음이 그을었을 때쯤,


" 나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걸까?"


다만 나는 어여삐 밟힌

벌레의 몸뚱아리를 날린다.


그저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살생도 겸히 받아들이리.

Scene in the movie The Lovers On The Bridge

시 5

진원


흔들림은 작은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점은 자라고, 자라

거대하게 흔들린다.


6301층짜리 건물을 무너트린다,

모든 벽을 허문다.


그렇게 점은

나의 6301일을 흔들었다.


자칫 모든 것이 무너짐에도

내가 그 흔들림을 안은 것은


모든 벽이 허물어졌기 때문이고,

진원인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건물들이 돌덩어리가 되고

겨우 살아남은 창문은 반쯤 깨져있고

철심은 갈비뼈 마냥 튀어나와 있고

쓸쓸히 핀 먼지는 마음을 뒤덮었고

그 풍경을 바라봄이 고통스러워도


그 즐거운 고통을 견디는 것은

흔들림이 사랑임을 믿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